필리핀의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 탄핵운동이 의회에서 거리로 뛰쳐나갈 조짐이다.필리핀 상원이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비밀계좌 조사 요청을 부결시킨 데 항의, 17일 주요 도시에서 이틀째 항의시위가 이어지는 등 야권과 시민들의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필리핀 상원은 16일 탄핵재판 검찰이 에스트라다의 부정축재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인 은행 비밀계좌에 대한 조사 허용 요청을 11대 10으로 부결시켰다.
하원의원들로 구성된 검찰은 에스트라다가 18개월의 재직기간 중 33억페소(미화 6,350만달러)를 조성, 6개의 가명계좌에 분산 예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원의 이 같은 표결은 핵심 증거의 추적을 막아 에스트라다에게 위기를 탈출할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상원에 '친 에스트라다' 의원이 예상보다 많이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내달로 예정된 상원의 대통령 탄핵안 표결 역시 부결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탄핵안은 탄핵재판을 맡고 있는 22명의 상원의원 중 3분의 2이상인 15명의 찬성을 얻어야 가결된다.
상원의 판결소식이 알려지자 필리핀 정국은 급변했다. 탄핵재판 검찰을 맡았던 하원 의원들은 이날 "상원의 결정은 수치스런 것"이라고 항의하며 사임했고, 아킬리노 피멘텔 상원 의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야권과 종교계, 학생 등 '반 에스트라다' 진영은 에스트라다의 퇴진을 위해 시위와 파업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 정국은 혼돈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필리핀의 정신적 지도자인 하이메 신 추기경은 "상원 의원들의 부도덕성 때문에 유혈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고 말했다. 군 참모총장을 지냈던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은 탄핵재판이 무산되면 친위쿠데타나 반 에스트라다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등 야권 인사들과 학생 등 수천명은 이날 밤 시민혁명의 성지에서 촛불 철야 기도를 가졌고, 마닐라 세부 다바오 등 주요 도시에서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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