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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IT도시들] (9)방갈로르(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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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IT도시들] (9)방갈로르(上)

입력
2001.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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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서남쪽 해발 920m의 고산도시 방갈로르. 무굴제국 시절 왕가의 여름 휴양지였다가 1960년대부터 항공산업으로 두각을 보인 이곳은 지금 소프트웨어 정보기술(IT)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도시다.도시 곳곳에 루슨트 테크놀러지, IBM, 모토로라, 인텔 등 세계 굴지의 IT 기업들이 자리잡아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방갈로르 공항은 IT 인력을 물색하기 위해 입국하는 '바디 쇼퍼'들과 H1비자(3년 동안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취업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떠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로 항상 붐빈다.

태고적 은둔과 무기력으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도에 방갈로르는 분명 돌연변이이자 희망이다.

방갈로르에는 인포시스, 위프로, BFL 등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을 비롯한 800개 이상의 IT 업체가 고용한 7만5,000여명의 엔지니어가 활동중이다.

인도전국소프트웨어기업협회(NASSCOM)에 따르면 이 지역의 수출액은 45억 달러로 인도 전체 소프트웨어 수출액의 45%를 넘고 있으며 매년 5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방갈로르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세계적인 골칫덩어리였던 컴퓨터 2000년 인식문제(Y2K)의 솔루션 분야에서만 20억 달러 이상을 수출했다.

주정부의 IT 지원 센터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기술단지(STP)의 B.W. 나이두 이사장은 "작년에만 700개 이상의 회사가 새로 방갈로르에 둥지를 틀었다"면서 "특히 최근들어 응용 소프트웨어, E-비즈니스, 이동통신 등 고부가 하이테크 업체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고 말했다.

방갈로르가 이처럼 인도 IT산업의 메카로 각광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영국 식민지 경험 때문에 700만 인구의 80% 이상이 IT언어라 할 수 있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자연적 요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방갈로르의 시차는 12시간. 낮시간 미국에서 근무한 뒤 인도 직원에게 미국의 밤(인도의 낮) 동안 일을 시키면 24시간 가동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방갈로르는 고속 데이터통신망을 이용해 역외(Off-shore)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

여기에 인도양의 열기가 미처 올라오지 못하는 데칸고원에 위치, 연중 내내 24~28도의 쾌적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무궁무진한 인력풀에서 쉼없이 배출되는 '고급 두뇌'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은 방갈로르의 최대 장점이다. 방갈로르에는 미국의 MIT에 비견되는 인도공과대학 등 무려 500개 이상의 IT 전문대학이 있다.

그러나 이곳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1만달러. 미국에서 비슷한 경력과 기술수준의 엔지니어를 고용하려면 6만달러 이상은 줘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 미국의 경제전문잡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 1,000대 기업중 300여개 업체가 방갈로르에 아웃소싱을 하고 미국 정부가 매년 발급하는 비자 쿼터(할당량)의 절반 가량을 인도 IT 인력에 배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방갈로르에 몰아치는 IT 열풍은 뿌리깊은 카스트 제도 마저 허물고 있다. 신분을 뛰어넘어 스톡옵션 등으로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갑부로 변신하는 성공 신화가 속출하면서 IT는 방갈로르 시민들의 꿈으로 자리잡았다.

방갈로르에서 오토릭샤(오토바이를 끄는 2인승차)를 운전하는 후레심(34)씨는 "나의 삶에 변화를 줄 유일한 희망은 두살난 아들을 소프트웨어 기술자로 키우는 것"이라면서 "아들을 미국에 유학보낼 수 있도록 많은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갈로르에도 약점은 있다. 중간규모의 소프트웨어 기업인 인디아소프텍의 사믈라트 사장은 "IT붐이 일면서 프로그래머들의 봉급이 매년 20%씩 오르고 사무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상승해 비용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여전히 열악한 인프라 수준, 제품설계ㆍ데이터 코딩 등 미국의 하청 산업에 치중된 경제구조 등이 도약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SW기술수준- "미국 추월할 날 머잖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술평가기준은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의 SEI-CMM 최우수 등급(레벨5)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처음으로 이 인증을 받았고 두 번째로 방갈로르의 모토로라 인디아가 획득했다.

현재 레벨5에 오른 세계 25개 업체 가운데 16개업체가 인도에, 그 중 12개 업체가 방갈로르에 몰려있다. 이같은 기술력을 배경으로 방갈로르의 간판기업인 인포시스는 불과 10년 만에 주가가 1만6,000배로 뛰어올랐다.

이밖에 상위 300개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 가운데 170개 이상의 기업이 이미 ISO9000 인증을 획득, 국제적으로 기술수준을 인정 받았다.

STP의 나이두 이사장은 "IT 산업의 승부는 결국 기술력에서 판가름이 난다"면서 "이 추세라면 방갈로르가 최소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만큼은 미국을 압도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레디 카르니타카주 IT국장 인터뷰

"IT 분야에서 만은 절대로 뇌물이 통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단지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뿐입니다."

방갈로르가 속한 카르나타카주의 IT 정책을 총괄하는 라마나 레디(40) IT 담당 국장은 행정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가 많으면 그 만큼 비리가 생기고 외국 기업들이 떠나게 된다"면서 공정한 행정이 부를 창출하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했다.

방갈로르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몰리는 이유는 세금과 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투자 의지와 능력만 검증되면 소프트웨어 수출입 관세를 면제해주고 부가세 등 각종 세금에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레디 국장은 "정부가 각종 허가 문서를 챙기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바빠졌다"면서 "기업들이 연구와 마케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방갈로르와 실리콘밸리의 대형 지도가 마주 걸려있다. 이에 대해 레디 국장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경쟁 도시를 상기하면서 일을 하겠다는 취지"라며 "실리콘 밸리는 우리가 추구한 모델이었지만 목표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열성적인 지원을 받아 젊은 고급 두뇌들이 계속 수혈되고 있고 그 인재들이 남을 위할 줄 아는 우리의 전통대로 자신을 바쳐 후학을 길러내고 있다"면서 "IT가 결국은 '사람 장사'인 만큼 인재풀이야 말로 방갈로르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레디 국장은 방갈로르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점으로 고급 기술 인력의 대량 해외 유출을 꼽았다.

그는 "방갈로르가 세계 'IT 인력의 사관학교'가 되면서 정작 이곳에선 인재 고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직률을 낮추고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카르나타카주의 성공적인 IT 육성에 자극받아 인도 26개주 중 19개 주가 최근 야심찬 IT 산업 정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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