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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걸프전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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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걸프전 발발

입력
200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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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17일 미군의 이라크 공습을 신호탄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33개 다국적군과 이라크 사이에 이른바 걸프 전쟁이 터졌다. 그 전해 8월2일에 있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을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미국이 주도한 이 전쟁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영토에서 철수한 지 이틀 뒤인 2월28일 종결됐다.한달 남짓 동안의 이 전쟁에서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10만여 회의 공중 폭격을 실시했고, 2월24일부터는 전면적인 지상 작전을 펼쳤다.

이라크군은 42개 사단 가운데 41개 사단이 무력화하고 15만 명의 사망자를 낸 끝에 쿠웨이트에서 물러났고, 다국적군은 125명의 전사자를 냈다. 한국은 5억 달러의 전쟁 지원금을 분담하고 군의료진 200명과 수송기 5대를 보내 33개 다국적군의 일원이 되었다.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그 전해에 쿠웨이트를 병합하면서, 쿠웨이트가 원유를 시장에 과잉공급해 유가를 떨어뜨림으로써 이라크 경제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쿠웨이트는 본디 이라크의 일부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쿠웨이트의 원유와 그 지정학적 위상에 깊은 이해관계를 지닌 미국의 눈에 이 주장은 어불성설이었다.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른 집단안보 조처의 일환으로 수행된 이 전쟁은 그때까지 개발은 됐으되 실전에서 실험해 보지 못한 하이테크 병기의 실험장이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전쟁은 세계의 여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오직 브라운관 안의 게임 같은 이미지만을 주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도미니크 시고는 지난 96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사막의 가설'에서, '인자한'부시가 '사악한 '후세인으로부터 쿠웨이트를 '해방'하기 위해 단지 '외과수술적'으로 펼쳤다는 이 '사막의 폭풍'작전이 사실은 약소국 민간인들에 대한 초강대국의 무차별 도륙이었음을 암시한 바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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