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성이 유행하듯 번지면 영화는 살아 남을수 없어요"여성감독에겐 짐이 하나 더 있다.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옵션'. 그러나, 임순례(41)감독 생각은 다르다.
"여성 얘기를 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고부관계 같은 것을 다룬 여성영화를 만들자는 제의도 있다. 여성영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소외받는 자의 평범한 삶의 이야기에 더 애착이 간다."
임순례 감독은 흔히 '여성이면서 여성적이지 않은 감독'으로 표현된다. 변두리 극장 매표원의 하루를 다룬 단편 '우중산책'으로 장편 데뷔의 발판을 마련했고, 군입대를 앞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고교 졸업생을 다룬 '세친구'(1996년)로 단번에 작가주의 감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얼마 전 '와이키키 브라더스' 의 촬영을 마쳤다. 5년 만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기다렸다'는 느낌도 없다."
그의 이런 '여유' 혹은 '담담함'은 수 십억원을 신인 감독에게 안겨주고 성공하면 다음 작품을 보장하고 아니면 완전히 '퇴출' 시키는 '감독 소모전' 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지금의 충무로 상황에서 자신을 추스릴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괜찮은 조감독, 능력있을 것 같은 신예를 기다려주기 보다는 익기 전에 열매를 따먹고, 버리는 분위기는 감독 자신이나 한국 영화계 모두 손해다."
5년 만에 다시 나온 현장은 많이 달라졌다. 스태프가 젊어지고, 도제식의 엄격한 분위기도 없어져 일하기가 수월해졌다.
자금의 효율을 위해 성별을 따질 이유가 없는 대자본이 그것에 한 몫을 했고, 세상이 달라진 점도 이유다. '텃세' 때문에 여성감독이 발을 못 붙이는 형세가 아닌 점이 무엇보다 다행스럽다.
명필름이 제작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지방 고교의 밴드 출신인 3류 나이트클럽 밴드리더의 이야기이다.
'수안보 와이키키' 라는 모던한 지향과 일상의 괴리처럼 소시민적 일상과 꿈의 괴리가 영화 전편에 드러날 예정이다.
그의 영화가 별볼일 없는 자들의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사회메커니즘이나 생의 의미를 사유할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힘이 있음을 적잖은 사람이 알고 있기에 두번째 영화 역시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홍상수와 임순례, 두 유학파 감독이 뿌린 그 '일상성'의 미학은 미진한 극적 장치의 면죄부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행처럼 일상성을 끌어다 쓰는 영화는 힘을 잃을 것이다. 그와 다른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는 영화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감독으로서 정체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관객으로부터 잊혀지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죽을 때까지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식의 각오도 없다.
상업영화나 디지털 인디영화나 그에게는 그다지 변별성이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이다.
그의 말이 유약함이 아니라 유연함으로 해석되는 것은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조용한 힘' 때문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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