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의 소외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미미하나마 사회적 개선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온 것이 사실. 그러나 최근의 경제위기는 이마저도 다시 원점으로 돌려 놓았다.특히 서러운 이는 취업중이거나, 취업을 앞둔 장애인들. 직장이 있는 장애인들은 구조조정 대상의 중심에 서 있고, 학교를 졸업하는 장애인들은 '사회인의 꿈'을 버려야 할 기로에 서있다. "일반인도 먹고 살기 어려운 터에 장애인들까지 챙길 여유가 어딨느냐"는 식의 시선 때문이다.
"장애인인 줄 몰랐네요. 외근직이어서 다니기 불편하실텐데요.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인터넷에 뜬 의류업체 직원채용 공고를 보고 "즉석 면접후 채용 가능"이라는 전화확인까지 받은 뒤 찾아간 지체장애인 김연호(24)씨가 인사담당자로부터 들은 얘기다.
내달 대학을 졸업하는 김씨는 이런 '수모'를 수없이 당했다. 상당수 업체에서는 아예 원서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김씨는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굴절돼 있는지를 실감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해 12월초 다니던 벤처회사의 부도로 실업자가 된 컴퓨터 프로그래머 이모(25ㆍ서울 강서구 가양동)씨.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그는 도무지 취업전망이 보이지 않자 택시운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장애인용 택시 구입은 곤란하다"고 딱지를 맞은 이씨는 "운전사난을 겪는 택시업계에서도 장애인은 찬밥일 뿐"이라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서울기능장애인협회가 지난 연말 실시한 '장애인 근로능력 및 기능보유 실태'에 따르면 한가지 이상의 기능보유 장애인 10만명 가운데 조사에 응한 8만4,000여명의 80% 가량인 7만여명이 실업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대학문을 나설 장애인들은 의대 등 극히 일부 전문학과 출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취업에 실패하리라는 전망이다.
명문 Y대 사회과학대를 졸업하는 K(24)씨는 고교 때 교통사고로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장애인. "대기업 5~6곳에서 서류와 시험은 문제가 없었는데 면접만 보면 떨어지더군요." K씨는 최근 취업의지를 완전히 포기, 곧 '차별'없는 나라로 이민을 떠날 생각이다.
재벌기업들의 장애인고용비율을 의무화한 '장애인 고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30대그룹 중 이를 지키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
2000년말 현재 30대그룹의 장애인 의무고용인원은 총 1만5,000여명인 데 반해 실제 고용 장애인은 고작 0.3%인 2,300여명. 사실 장애인 고용을 선도해야 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고용비율도 겨우 1.5% 수준이니 기업에 뭐라 할 것만도 아닌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직업교육 및 고용지원 등은 무의미함을 지적한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조문순 팀장은 "국가 차원에서 장애인을 위한 예산확보와 정책수립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이웃'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2000년 장애극복상 3人
'뇌성마비를 극복해낸 컴퓨터 프로그래머, 정신지체 및 간질환 이겨내고 8년째 한 회사근무, 전신마비 사고 후 소설가로 제2의 인생.' 2000년 장애극복상을 받은 3명의 수상이유다.
선천성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인 정재학(30ㆍ서울프리랜서그룹 컴퓨터프로그래머)씨는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든 주인공. 가난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했지만 독학으로 컴퓨터를 익혀 1990년 전국장애청소년PC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구두제조업체인 에스콰이아 생산팀에 근무하는 임정수(29)씨는 취업 장애인의 귀감.
정신지체 1급 장애와 간질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직장에서 탄탄하게 인정받고 있다. 임씨의 성실성에 감탄한 회사측에서는 장애인 6명을 추가 채용했다.
김금철(47ㆍ대구 달성군)씨는 철도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스무살때 선로작업 도중 열차에 부딪쳐 양 팔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됐다. 그러나 이젠 60여편의 소설을 탈고한 중견작가로 우뚝섰다.
김씨는 "비록 장애가 있어도 집념을 갖고 매진하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동요 장애인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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