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기업 자금난을 초래했던 이른바 '3불(不) 현상'(회사채 발행, 은행 대출, 유상증자 불가)이 새해 들어 조금씩 해소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지적도 적지않지만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조속히 마무리된다면 예상보다 빨리 신용경색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15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기업 회사채 시장은 이달 들어 10일까지 신규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많아 420억원 순상환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11월(8,000억원 순상환), 12월(5조2,000억원 순상환)에 비해서는 크게 호전됐다.
특히 투자적격의 최하 신용등급인 'BBB'급 회사채 발행 규모는 지난해 10월 1,690억원, 11월 700억원 등으로 극히 부진했으나 12월 5,580억원으로 늘어난데 이어 올들어 8일까지 벌써 2,090억원 어치가 발행되는 등 점차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투신 김용범 채권2팀장은 "기관들의 안전자산 선호로 국고채 금리가 5%대로 낮아지면서 자산운용에서 역마진을 기록하자 은행들이 그동안 외면했던 회사채 시장으로 조금씩 눈길을 돌리고 있다"며 "그동안 'A+'급 이상 회사채만 간신히 소화됐지만 최근 20여일 동안 'A-'급 회사채도 심심찮게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대출시장도 풀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3조9,000억원의 순상환을 기록했던 은행 대출은 이달 5일까지 2조원의 순대출로 반전됐다.
연말에 기업들이 부채비율 200%를 맞추고 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대출 상환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아직 섣불리 은행 대출 확대를 점치기는 이르다.
하지만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구조조정 윤곽이 드러난 은행들을 중심으로 기업대출 확대가 적극 검토되고 있는 추세다.
한빛은행 자금팀 관계자는 "지난해말 공적자금 투입으로 자금운용에 다소 여유가 생겨 중견ㆍ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조만간 1조~2조원 규모의 대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종합주가지수가 600선을 돌파하고 코스닥지수도 80선에 육박하는 등 주식시장이 모처럼 기지개를 펴면서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도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자금경색 완화 기미가 장기적인 대세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 'AA-'와 'BBB-' 회사채간 금리 격차가 지난해 11월 3.52%포인트에서 12월 3.69%포인트, 1월 12일 현재 3.88%포인트 등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현대투신증권 박성원 채권전략팀장은 "회사채나 기업의 매력이 되살아났다기 보다는 정부의 임시처방과 극심한 경색에 따른 반사 효과로 인해 단기적으로 기업들의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라며 "조속한 구조조정으로 금융시스템이 완비돼야 자금시장이 예전처럼 원활히 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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