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돌이 형, 올핸 우리 차례입니다!"1985년 생 소띠 동갑내기. 빠른 두뇌회전과 수읽기,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지닌 '앙팡 테리블'.
최철한ㆍ원성진ㆍ박영훈 신예 3인방이 밝히는 신사년(辛巳年) 새해 출사표다. 2000년이 두 살 위 선배인 '불패소년'이세돌의 해였다면 올해엔 이들 16세 트리오의 반상 혁명이 예상된다.
정상 4인방의 아성이 힘없이 무너진 춘추전국시대. 지난 한 해 동안 기라성 같은 강자들을 제치고 각각 55승 18패(최철한), 49승 13패(박영훈), 47승 24패(원성진)로 다승 3, 5, 7위에 오른 3인은 누가 뭐라해도 혼란기에 두각을 나타낼 기대주임에 틀림없다.
입단 순으로 볼 때 최고참 격인 최철한 3단은 지난 해 국가별 단체대항전인 '제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통해 일약 '국제 스타'로 떠오른 유망주.
처녀출전한 세계대회에서 중국의 '6소룡'류징(劉菁) 7단과 위핑(余平) 6단을 연파했고, 배짱도 좋게 일본 랭킹 3위 혼인보(本因坊) 보유자 왕밍완(王銘琬) 9단마저 꺾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창호 9단과는 역대 전적 2전 2패. 그러나 "진 대국을 복기해 보면 항상 후회가 남았다. (이 9단과는) 대국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지만 도저히 이기기 힘든 상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신예답지 않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타크래프트 실력이 '준 프로' 수준이라는 최 3단의 올해 목표는 '도전기 진출'. 이창호 같은 대선배에게 타이틀 도전을 해보겠다는 야심이다. "평소 잠이 많고 게으른 편인데 올핸 좀 더 부지런하게 공부하고 싶다"는 그는 "특히 판을 짜는 실력을 길러 초반 바둑을 강화하는 것이 일차 목표"라고 다짐했다.
98년 입단한 원성진 3단은 지난 해 1월 제34기 왕위전 본선 1국에서 '세계 최고의 공격수'유창혁 9단을 난타전 끝에 불계로 제압하며 일찌감치 반상 쿠데타를 예고했다.
17연승(99년 12월 7일~2000년 3월 10일)으로 이세돌(32연승)에 이어 연승 랭킹 2위에올랐고, 제12기 기성전, 제5회 LG배세계기왕전, 제5회 삼성화재배, 제6기 천원전 등 4개 기전의 본선에 잇따라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권갑룡 도장 출신인 라이벌 최철한한테는 통산 4전 전승의 압도적 우위를 지키고 있다.
침착하고 끈기가 대단한데다 승부근성이 강하기로 소문난 원 3단은 '세계 타이틀 쟁취'를 올해의 목표로 삼았다. 이창호 스타일의 수비형 실리바둑을 두어온 그는 "최근에는 수비보다는 공격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초반 포석과 전투력을 강화해 보다 변화가 많고 힘이 느껴지는 바둑을 두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앙팡 테리블'3인방 가운데 가장 입단이 늦은 새내기 박영훈 2단은 성적 면에선 최ㆍ원 3단 보다도 오히려 한 수 위. 99년말 입단해 2000년부터 프로기전에 출전한 그는 사실상 프로 원년인 지난 한 해 동안 승률 79.03%로 이창호(83.33%)에 이어 승률 2위에 당당히 올랐으며 제8기 배달왕기전에서는 도전자결정전까지 오르는 괴력을 과시했다. 배달왕기전 도전자결정전에서 이세돌 3단과 접전 끝에 아깝게 1승 2패로 물러나긴 했지만 입단 첫해 성적으로 따지자면 국내 바둑 사상 최초의 대기록이라 할 만하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입단 첫해엔 이창호도 의욕만 앞세우다 성적은 별로였는데 박 2단은 자기 통제력과 정신력이 놀랍다"며 "대성할 소질이 다분하다"고 평했다.
특별한 도장에 적을 두지 않은 채 아마 무대(13세 때 최연소 아마국수 쟁취)에서 주로 활동하다 일반인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에 입문한 그는 "친구들에 비해 뒤늦게 입단한 만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 같다"며 "공격과 수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유로운 바둑을 두고 싶다"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