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베이스 캠프!"1998년 4월, 무전기에서 흘러 나오는 음성은 다급했다. 고도 4,800㎙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로 대원들이 몰려들었다.
몇 분전, 7,600㎙ 지점에서 엄홍길 대원은 내게 정상이 바로 눈앞이라며 두 시간 후면 등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이미 14시간 이상 빙벽을 타고 오르는 고난도 등반을 계속 중이던 엄대원에게 난 그 자리에서 몇 시간만이라도 눈을 붙이고 날이 밝으면 다시 오르라고 당부했고 그도 그러마 했었다.
그런데 그가 천길만길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강풍에 밀려 차례로 추락한 두 셀파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자일을 붙잡고 버티던 그가 무게에 못이겨 빙벽 아래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셀파들은 솜 같은 눈 위에 떨어져 상처하나 없었지만, 엄대원은 다리가 골절되고 발목이 180도 돌아버린 중상!
20년을 히말라야 고산 등반의 한 길만을 걸어오며 세계의 8,000㎙ 고산 14좌를 모두 오르려던 그의 꿈이 열한번째 정상인 안나푸르나에서 벌써 네번이나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앞으로 산악활동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지도 모르는 심한 부상이었다. '98 한국 안나푸르나 원정대장'으로 참가중이던 나 역시 암담하기만 했다.
급히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연락을 했지만 제트기류 때문에 구조헬리콥터가 4,500㎙ 이상 오른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고 그 지점까지 우리가 환자를 운반할 수 밖에 없었다.
2박3일을 잠 한숨 못자며 엄대원을 구조해 내려오는 나머지 대원들의 투혼은 죽음을 각오한 한걸음 한걸음이었다.
한낮은 영상 25도 까지 오르고 밤에는 영하 25도의 추위와 싸워야 하는 극한 상황. 무엇보다 이런 일기에서는 다친 다리의 혈액순환이 순조롭지 않아 절단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나를 괴롭혔다.
베이스에 있는 대원들은 급히 구조헬기 착륙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헬기가 도착하기 전에 만년설의 설벽을 헬기가 착륙할 정도로 깎기 위해 그 단단한 피켓의 쇠 끝이 잘려나가는 줄도 모르고 얼음 땅을 찍어댔다.
간발의 차이로 엄대원은 무사히 구조돼 내려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우리들은 살아내려온 그를 바라보며 그저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탑승한 헬기가 사라 진 후에도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역경을 이겨내는 강한 자의 모습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고인경 ㈜파고다 아카데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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