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월16일 시인 김영랑이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1950년 몰(歿). 김영랑의 본명은 김윤식이다. 문학평론가인 서울대 국문과의 김윤식 교수와 한자까지 똑같다. 영랑의 고향인 강진은 정약용 김정희 초의(草衣) 같은 이름들과 얽혀 있는 곳이다.
넉넉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영랑은 어려서 한학을 배운 뒤,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시(詩)가 노래라는 말이 영랑의 시에서만큼 실(實)을 얻고 있는 예도 달리 찾기 힘들다. 그의 시들은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 읽을 때조차도 음악이다.
그리고 그 음악은 영랑 자신이 어느 시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불렀던, 영롱하고 모호하고 텅 빈 탈사회적 서정을 노래한다. 그의 시와 세상사(世上事) 사이에 들어선 벽은 어쩌면 그의 물질적 넉넉함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예컨대 가냘프되 어렴풋한, 포근하긴 하되 손에 잡히지는 않는 어떤 마음결을 노래하고 있는 이런 시를 보자.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랴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한국 현대시의 흐름에서 영랑은 하나의 샘이다. 김억과 김소월이 그 샘으로 흘러들었고, 서정주와 박재삼이 그 샘에서 흘러나왔다. 이 계열의 '여성적인'시인들은 정교하게 선택된 토속어를 또렷한 리듬에 실어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표본적으로 보여주었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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