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잘못된 점 몇가지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그 중의 하나로 지나친 '불신풍조'를 지적하고 싶다. 이런 현상은 특히 행정기관을 중심으로 조직사회에 크고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한 부서의 실무자는 물론 책임자까지도, 더 나아가서는 조직 자체를 주위에서 신뢰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행정절차가 복잡해지고 까다롭게 될 수밖에 없으며 내,외부로부터의 점검 또한 터무니 없고 지나치다 싶을 때가 허다하다. 이런 양태를 놓고 행정의 발전 혹은 선진화라고 자위한다면 우리는 후진성을 탈피할 길도, 효율성 넘치는 밝은 사회를 이룩할 도리도 없게 된다.
월드컵 조직위는 법적으로 엄연히 민간기구이며 비영리 법인. 게다가 단 한푼의 예산지원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행정 절차는 정부기관과 꼭 같은 스타일을 강요받고 있다. 원칙적으로야 그게 타당해 보일지 모르지만 너무 지나치다 보니 어떻게 하든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멋지게 치루기 위한 선택보다는 행정 행위 자체에 대한 책임을 면하는 쪽으로만 일이 기울어지고 있다.
각종 기념품이나 홍보용품을 제작하더라도 '싼 값'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행정적 책임은 면하게 될지 모르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문제가 있게 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나 조직위 관계자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제도 운영이 불신을 바탕으로 너무 경색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과 우리 사회의 일반적 정서에 문제가 있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세세히 열거하기도 번거로울 정도로 많은 직ㆍ간접적 점검(감사) 절차를 통과하면서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연히 배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체제 아래서 조직위 업무가 시기 적절하게 매끄럽고 효율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라는 건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하겠다.
우리와 같은 업무를 해나가는 일본 조직위 관계자들은 우리가 수시로 국회에 출석, 점검을 받아야 하고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를 호되게 치러야 하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동정어린 눈빛을 보낸다. 일본의 경우 감사는 커녕 중요한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서 자율권을 가지고 과감하게 결정해 나가도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월드컵 대회를 성공시키려면 조직위를 옭죄고 있는 지나친 견제의 사슬을 과감하게 풀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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