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없고 법만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매사를 법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정치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다는 뜻이다.엊그제 검찰이 안기부 돈 수사와 관련, 한나라당 당료 4명을 기습 체포한 것도 정치를 무용지물화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검찰이 기습 체포작전을 벌인 데에는 수사상 불가피한 조치 등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한걸음 더 나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법대로 하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여야관계, 정치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런 식의 체포작전은 무리였다. 굳이 정국을 긴장시키고, 여론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여론은 예나 지금이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강자보다는 약자 편에 쏠리게 되어 있다. 실제로 야당은 "소환장도 없이 새벽에 들이닥쳐 당직자를 잡아 가는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라고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데, 이런 외침에 사람들은 솔깃해 있다.
이들에 대한 체포는 법의 형평이라는 점에서도 적절치 않다. 당 사무처 요원이 1,000억원 대를 선거자금으로 빼돌리는 일에 직접 관여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사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누가 결정하고 집행했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그럼에도 참고인인지 피의자인지도 확실치 않은 사람들을 수사하면서, 소환절차 없이 기습적으로 체포ㆍ연행한 것은 형평에 맞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 민주주의적 절차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강한 정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이런 일이야 말로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을지라도 '민주주의적 절차와 국민적 합의의 바탕'에 부합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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