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말 "자는 도중 갑자기 숨졌다"며 아버지 홍모(30ㆍ서울 관악구 신림동)씨가 신고한 생후 15개월된 딸. 그러나 단순변사로 처리하려던 경찰은 아이의 몸을 보고는 얼굴을 돌렸다.그 앙증맞은 몸뚱아리가 끔찍스런 피멍으로 뒤덮여 어디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는 "구타에 의한 간 파열"이었다.
1년전 실직당하고 아내(26)마저 가출한 뒤 혼자 아이를 키워오던 홍씨의 화풀이성 상습폭행이 원인이었다.
13일에는 충북 청주에서 불과 다섯살배기 아들을 폭행하며 거리로 내몰아 혹한속에서 구걸행위를 강요해온 비정의 어머니 이모(37)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경제난이 '피학대 아동'을 양산하고 있다. 실직과 사업부진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회적으로 무력해진 부모들이 '소유물'인 자식들을 쉽게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까지 신고된 아동학대건수는 총 3,489건. 1999년 한해 2,155건에 비해 1년사이에 1.6배나 늘었다. 이는 807건이었던 97년보다는 무려 4.3배나 증가한 수치로, 그 대부분(95%)이 부모에 의한 것이다.
유형별 학대는 '무관심'으로 대표되는 방임이 46.1%로 가장 많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정윤수(가명)군은 이 때문에 '꼬마 범죄자'가 된 경우다.
어머니(34)의 극도의 신경질과 무관심이 직접 원인이 돼 윤수는 벌써 그 나이에 5차례의 가출과 6번의 절도를 저질렀다.
무관심 다음으로는 폭력 등 신체적 학대가 41%로 두번째로 많았고 정서적 학대 17%, 성적학대 3.4%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7월13일부터 발효된 개정 아동복지법은 ▦학대신고 의무화 ▦학대자 처벌강화(5년이하 징역형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 ▦학대아동의 강제격리 등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법'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 긴급신고전화(1391)가 처음 개통한 지난해 10월 한달간 전국 17곳의 아동학대예방센터에는 1,497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한국어린이보호재단 관계자는 "그러나 이 숫자는 전체 학대규모의 20~30%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고가 의무화돼 있는 교사 의사 등의 신고는 단 한건도 없다. 무관심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 작용해 신고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고 후의 처리도 매끄럽지 못하다. 조사에 나선 경찰이 부모 등 가해자 말만 믿고 돌아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현재 아동학대예방센터 1곳당 6명꼴인 복지지도원인력과 연간 9억6,000만원의 예산으로 아동학대를 효율적으로 챙기기란 무리라는 지적도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형모(金亨謨)책임연구원은 "급증하는 아동학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부출연의 '국립아동학대연구센터'를 하루빨리 설립해 전국적 규모의 피해아동과 가정, 가해자에 대한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학대받은 어린이 당사자는 평생 치유키 힘든 후유증을 겪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학대의 경험을 '세습'한다.
이제 겨우 7살인 상민(가명)군. 기억상실증에 걸려 제 이름도 잊은 채 어른만 보면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신체적 성장도 더딘데다 대ㆍ소변조차 가리지 못했다. 상민이는 아동보호시설을 통해 정상 가정에 위탁된지 1년여만에야 기억을 되살려냈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아빠가 계속 때렸어요. 발로 걷어채이고 전화기로 얼굴을 맞았어요. 무서웠어요.."
서울대 의대 홍강의(洪剛義ㆍ소아정신과)교수는 "학대를 받고 자란 아동의 3분의 1이 정신지체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에 신고된 사례 중에는 아버지에게 망치로 얻어맞았던 정모(11)군이 똑같이 동생(9)을 망치로 때린 것도 있다. 이광문(李光文)소장 은 "학대아동의 부모 중에는 본인이 어렸을 적 구타나 욕설을 당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진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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