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선거자금의 출처를 놓고 한나라당과 상도동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가 된 선거자금이 안기부 예산이 아닌 '정치자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정작 자금의 출처를 놓고 서로를 겨냥해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것.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측이 "기업체 등에서 당으로 들어온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청와대로 들어온 자금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나라당 주진우(朱鎭旴) 총재비서실장의 '대선 잔여금' 주장 번복 해프닝은 양측의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난 계기.
13일 "당 소속 정보위원들이 95, 96년 안기부 예산을 확인한 결과 한 푼도 유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주 실장은 "대선 잔여금일 가능성도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라며 은근히 YS를 겨냥했다.
주 실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상도동 측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펄쩍 뛰었다.
박종웅(朴鍾雄) 의원은 "대여투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마당에 YS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적과 동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살 골을 넣는 행위"라고 쏘아붙였다.
김 전 대통령도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박 의원의 전언. 당황한 주 실장은 다음날 "발언의 진위가 왜곡됐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상도동 측은 "어쨌든 한나라당의 기류를 반영한 것은 사실"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한나라당 내에는 안기부 선거자금 수사 이후 YS의 소극적 대응에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와 YS와의 전략적 제휴를 위해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상도동 방문을 건의하는 목소리 등 다양한 기류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13일 안기부 선거자금 수사와 관련,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 부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용기를 갖고 꿋꿋하게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강 부총재도 이에 "끝까지 싸울 각오가 돼 있다"고 대답했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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