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철아! 아버지가 이제야 널 보러 왔다. 넋이나마 편히 쉬거라."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보안분실 509호실. 19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14년만에 박씨의 원혼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렸다.
조그만 창문 2개에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4평짜리 조사실에는 당시의 테이블과 욕조, 변기, 침대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 박정기(72)씨는 승려 3명과 함께 아들의 영정과 위패, 촛불, 향, 국화, 장미꽃다발 등을 하나하나 제상에 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양산 통도사 성전암 주지인 백우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는 동안 박씨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세면기 위에 올려놓은 아들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정차순(69)씨는 차마 나오지 못했다.
아들의 위패가 재로 태워져 욕조 위에 흩어지자 그제서야 아버지는 통곡을 터뜨렸다. 박씨는 "현장에 와 보니 종철이가 숨지는 순간 느꼈을 고통이 절절이 밀려온다"면서 "아들이 죽음으로 지켜낸 민주화의 양심과 지조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 방은 계속 보존해야 한다"고 희망했다.
박종철씨가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소재를 대지 않았던 박종운(39)씨도 이날 공안분실 앞을 찾아"14년간 원죄처럼 짊어진 종철이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진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경찰청은 당초 박정기씨의 대공분실 방문신청을 보안상 이유로 불허했으나 동정여론이 일자 과거청산 및 인도적 차원에서 현장에서의 위령제를 허가했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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