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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포럼 / 기업 집중투표제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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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포럼 / 기업 집중투표제 의무화

입력
2001.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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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 34명은 최근 기업의 집중투표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법 및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시민단체들도 지난해부터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를 촉구하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

하지만 재계는 그렇게 될 경우 이사들 간 이해관계가 상충돼 신속한 의사 결정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찬성] 소액주주 대리인 뽑아 이익 보호할 권리

모든 거래와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 정보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며 그러한 정보에 기초해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 나아가 거래의 성과에 따른 보상과 실패에 따른 책임추궁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시장만이 미시적 거래와 거시적 자원배분기능을 제대로 수행한다.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이 시장 또는 거래의 효율성을 달성하는데 있어 지켜져야 할 원칙이라고 할 때, 기업경영과 관련한 투자자와 경영진 사이의 대리인문제는 경영의 효율성을 왜곡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나름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관행을 정립해왔다.

그러나 지배주주에 의한 경영권 남용으로 경제 전체가 고통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대리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관행이 아직도 미비한 실정이다.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는 바로 이런 현실에서 출발한다.

집중투표제와 현재 방식인 단순투표제를 국회의원선거제도에 대입시키면 비례대표선출방식이 집중투표제에, 지역구후보선출방식이 단순투표제에 가깝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회사 즉 주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 기업을 경영해야 하며 기업의 각종 중요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단순투표제에 의하면 이사들은 자신을 뽑아줄 능력을 가진 지배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므로 지배주주의 이익과 다수 소액주주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지배주주의 이익을 우선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경영과 관련한 중대한 의사결정이 아무런 견제 없이 비밀리에 행해지는데도 정보가 공개될 여지가 없다면 사전적, 사후적인 각종 경영권 견제장치들도 작동되지 못한다. 그 결과 투자자의 이익은 보호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만약 소액주주에 의해 선출된 이사가 존재한다면, 이사회에서 다수결로는 지더라도 최소한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할 수 있어 지배주주에 의한 경영권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

또한 정보가 공개돼 평가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무능하거나 부패한 경영진의 교체도 활성화할 것이다.

현재 이러한 목적으로 도입된 사외이사제도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핵심적인 원인은 사외이사가 지배주주에 의해 선임되므로 독립성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사외이사제도를 보완하는 방법보다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방법이 지배주주의 모럴해저드와 대리인문제를 해결하는 보다 효율적인 수단이며 장단점을 비교할 때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은 제도이다.

일부에서는 이사끼리의 의견 충돌로 일사불란한 의사 결정이 안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우선적이고 시급한 과제이다.

민주적 기업운영이 당장에는 비용이 많이 들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겠다.

김석연 변호사

[반대] 경영 효율성 하락·구조조정 방해 우려

집중투표제는 1998년 경영 투명성이 강조되면서 소액주주권 강화를 위해 상법에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부작용이 반드시 뒤따르기 때문에 회사들이 정관으로 이를 배제할 수 있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금년에는 이에 불만을 가진 시민단체의 요구로 집중투표제를 어느 회사든 주주가 요구할 수 있게 하고, 그 자격은 1주만 있어도 가능토록 하는 개정안이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되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만약 법이 통과돼 집중투표제를 남발하는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여러 가지가 있다.

소액주주와 대주주가 의견이 다를 경우 이사회에서의 잦은 충돌로 회사 경영이 제대로 안되고 그 결과 전체주주에 피해를 준다.

이것은 곧 소액주주에 의해 선출된 이사가 소수 이익만을 대변하는 역할을 갖기 때문에 전체 주주의 이익을 도모해야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에 반하는 것이 되고 상법의 기본 정신에도 어긋난다.

기업정보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 회사의 중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이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소액주주 등에게 이와 같은 정보를 사전에 유출 할 경우 비밀유지가 필요한 사업의 채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사업 자체의 성사마저 어렵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유출은 소액주주의 주식매수청구비용을 올리게 되어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어렵게 한다.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인수합병이 행해지는 지금의 경제환경 속에서 이를 저해하는 것은 회사와 주주이익을 해친다.

뿐만 아니라 경영권 시장을 통한 지배주주의 견제기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역작용을 가져 온다.

주식회사는 근본적으로 기업 효율을 높여서 주주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경영 목표로 하고 있다.

이사회는 이런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집행기구인데, 이사를 다수를 대변하는 이사, 소수를 대변하는 이사로 양분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려서 회사의 근본취지인 주주이익을 최대한 보장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대주주의 전횡 방지, 경영자의 책임경영, 신뢰성 제고를 위해서라면 득보다 실이 많은 집중투표제 대신 공시 제도 강화, 경영권 시장 활성화 등으로 얼마든지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

이익을 최대한 창출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기업이 맡은 사회적 본분이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한다고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것은 이러한 기업의 경영목표에 어긋나기 때문에 소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러시아 멕시코 등에서 하고 있는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는 충분한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고 이의 도입은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틀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신중을 요한다.

특히 기업은 이윤 창출을 통해 계속 유지가 돼야 하는데 이를 가로막는 제도 도입은 기업인들의 의욕을 떨어뜨린다.

지금같이 경기가 좋지 않은 때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것은 시의에 맞지 않을 뿐 더러 법의 안정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엄기웅 대한상공회의소 상무

■네티즌 나도 한마디

한국i닷컴(hankooki.com)에 보내온 네티즌들 사이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그동안 대주주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잘 아시죠. 기업을 제 마음대로 운영해왔어요. 그 결과가 IMF구제금융 아닙니까.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기업 운영에 충분히 반영됐다면 그런 일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 고바우

집중투표제는 좋은 제도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닐 수도 있다. 경제가 어렵지 않은가. 기업 경영도 얼마나 어려운가. 공연히 지금 도입하면 기업하기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나중에, 정말 경제가 좋아지면 그때 하기로 하고 잠시 미루는 건 어떤가. / 이순자

당장 도입했으면 좋겠다. 공연히 미루지 말자. 소액주주의 권한이 세지면 대주주의 횡포를 막고 기업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겠는가. / 김수희

너무 이상적으로만 접근하지 맙시다. 득실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여러 제도를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 이기자

재벌 대주주의 횡포를 견제할 장치가 마련된다면 괜찮겠군요. 조금 혼란스럽더라도 한발 물러서서 국가경제의 바른 길을 찾고자 한다면 금방 자리가 잡히겠죠. / pear

집중투표제란

현재 기업에서는 각각의 후보에 대해 주주들의 의견을 물어 이사를 선임한다. 이에 따라 가령 A후보를 놓고 대주주가 지지하고 소액주주들이 반대하면 지분 비율 차이로 인해 A후보가 이사로 선임된다. 나머지 B, C, D후보도 대주주의 뜻에 따라 선임여부가 결정돼 버린다.

그러나 집중투표제에서는 모든 이사 후보를 대상으로 한꺼번에 지지여부를 물어 다득표 순으로 이사를 선임한다.

때문에 대주주의 지분이 여러 후보로 분산될 수 밖에 없고, 소액주주들은 특정 후보에 표를 몰아줄 수 있어 소액주주주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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