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월 12일 미국의 국무장관 딘 구더햄 애치슨이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아시아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며,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고 선언했다.이것이 이른바 애치슨 선언이다.
애치슨은 구체적으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발표했는데, 요컨대 이 방위선 바깥의 한국과 대만 등의 안보는 국제연합의 책임아래 둘 뿐 미국이 거기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연설 직후에 이승만 정부는 미국정부에 대해서 그 선언의 취소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흔히 애치슨 라인 이라고불리는 이 동아시아 방위선의 설정은 그 해 6월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자 공화당으로부터 6.25의 발발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이 군사전략상의 도서방위선 전략을 채택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이 선언이 6.25의 발발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북한이 전쟁 실행을 구체적으로 결정한 것이 49년 말이크로 이 선언이 전쟁 발발에 끼친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견해도 있고, 북한의 저쟁 수행 지원에 머뭇거리던 스탈린이 전쟁을 통한 남한의 공산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이 애치슨 선언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애치슨(2893~1971)은 코네티컷 출신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워싱턴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41년 이래 민주당 국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53년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자 공직을 떠난 뒤에소 60년대의 케네디 존슨 등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의 외교 정책 고문으로서 미국 외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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