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은 '강한 정부론'으로 압축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강한 정부는 군사정부와 같이 권위적인 힘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라고 규정했지만 '원칙과 법의 준수'를 여러 차례 강조하는 등 힘있는 국정운영의 의지가 회견 곳곳에 스며 있었다.구체적인 현안에 있어서도 강한 입장을 견지했다. 안기부 선거자금 문제의 원칙적인 처리, 4대 개혁의 흔들림없는 추진 등 정책적 측면의 강한 의지는 물론이고 정치불안과 집단이기주의의 불용, 책임의식 등의 강한 메시지를 야당, 노조, 언론에 전했다.
특히 야당에 대해 김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을 불변의 원칙으로 설정하면서도 민주주의와 법치의 원칙, 상대를 존중하는 상생의 원칙을 요구했다.
김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의 총리인준안 처리 지연,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 등을 적시했으며 의원 이적과 관련, 야당이 과거 여당 때인 15대 총선 직후 야당과 무소속 의원들을 빼간 사례를 열거하며 "야당은 의원 이적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다. 야당이 '흔들기'를 계속한다면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노조에 대해서도 희생만을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정부는 확고한 의지로 4대개혁을 이룰 것이며 집단이기주의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정부에 대해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 불법적인 노사분규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언론에 대해 개혁의 화두를 던진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강한 정부론은 경제부문에 있어서는 재도약의 자신감으로 투영됐다. 김 대통령은 "하면 할 수 있다는 게 경제"라고 강조하면서 "4대 개혁, 정보화를 제대로 하면 하반기 경제는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강한 국정운영 의지는 자칫 유연성의 부족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여권의 전반적인 기류는 강한 정부론에 찬동하는 흐름이지만, "야당이나 언론, 노조 등에 너무 강한 입장으로만 일관하면 갈등을 증폭시켜 결과적으로 국정추진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기대 못미친' 국정쇄신책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회견에는 국정쇄신책이나 국정운영기조의 변화 등과 관련해 알맹이 있는 내용이 별로 없어 기대에 못미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연초에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국민이 바라는 국정쇄신책을 밝히겠다고 공언했던 약속을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한 셈이다.
김 대통령은 모두발언과 일문일답에서 국정 전반에 대해 언급했으나 평소 강조해오던 것을 다시 한번 반복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새롭거나 인상 깊은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두발언에서 인사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은 편중인사 논란 등에 대한 여론을 의식한 것이지만 인사정책 쇄신의 구체적 방향과 개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인적 쇄신과 관련해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개각의 폭 및 시기 등을 묻는 질문에는 답변을 유보했다.
안기부 선거자금 수사 및 정치자금 문제, 의원 이적 논란 등 최근 여야간 공방이 치열한 민감한 정치현안들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비칠 수 있는 원칙론과 주장을 되풀이했을 뿐 국민과 야당에 호소력을 지닌 설명은 부족했다는 평가다.
특히 끝없이 되풀이되는 정쟁을 지양하고 상생의 정치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비전 제시도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한나라 조목조목 반박
한나라당은 11일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 대해 분야별로 나눠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김 대통령의 '민주적이고 강력한 정부론'에 대해 현정권의 파괴성과 무도함을 가리려는 이중화법으로 규정, 실제로는 물리력에 의한 강력한 정치만 추구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안기부 선거자금 수사의 경우 청와대가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음에도 검찰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서는 '나는 합법 너는 불법'이라는 발상을 고집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의원 이적에 관련, 총선 민의를 견강부회 식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국민 비판은 감수하겠지만 야당 비판은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DJ식 도그마의 극치라고 맹공했다.
특히 정계 개편에 대해 "논의한 일 없다"는 식의 선문답을 계속, "안 한다"는 확정적 답변을 피했다고 지적했다.
대야 관계에 대해 야당의 협력을 못 받았다는 발언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야당이 거수기가 되어야 한다는 야당관이야말로 황제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경제 분야와 관련, 경제악화의 근본원인인 정치 안정을 위해 자민련과 공조를 굳건히 하겠다는 말은 수의 정치로 야당을 탄압, 오히려 정치가 더 불안해지고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김 대통령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6%로 낙관했는데 대부분 전문가들은 4% 성장도 힘들 것으로 본다며 혼자만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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