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어놓고, 그 나무에서 열매를 기대했으나, 얻지 못했다.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새해에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해서 왔으나, 찾지 못했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했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시지오. 그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누가복음 13장 6~9절).
구조조정은 포도원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는 것이 바로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올 한 해만 더 기다려보자는 포도원지기의 말도 일리가 있다. 여기에 구조조정의 딜레마가 있다. 1년 뒤에 열매를 찾을 수 있는 기업들을 어떻게 선별하고, 어떤 거름을 주어야 하는가.
먼저 찍어버려야 할 기업을 찾아보자. 일부에서는 부채비율을 거의 절대시한다. 그러나 초기자본이 많이 소요되거나, 성장성이 높은 기업도 부채비율은 높아질 수 있다.
영업이익도 중요한 기준이지만, 이것 역시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오늘과 내일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도 초기에는 적자와 과다한 부채에 시달렸지만, 오늘은 달라지지 않았는가. 어디 그 뿐인가.
시장은 더 급속하게 변하고,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는 국내정책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그만큼 기업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오늘의 기준만으로 찍어버리다가는 포도원 전체가 황폐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을 엄선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제에서는 그 선택의 기준이 바로 기업의 유연성이다. 변화하는 시장여건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시장여건에 따른 생산과 고용의 유연성이 바로 기업생존을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 생산구조가 신축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공급여건에 따라 고용규모도 유연하게 변동될 수 있어야 한다.
수요는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종전과 같이 생산과 고용이 경직적인 기업이라면 어떻게 세계기업과 경쟁할 수 있겠는가.
글로벌 경제에서 잘 나가는 미국과 일부 유럽에서 노동시장이 가장 유연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심한 태풍 속에서는 딱딱한 나무와 경직적 구조물이 먼저 무너진다. 그래서 지진이 많은 지역에서는 건물구조도 유연하게 설계하지 않는가. 기업이 유연하지 못하면,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신축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선택 못지않게 집중도 중요하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공적자금을 집중적으로 과감히 투입해 금융시장부터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은행권의 회사채 인수문제도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시적 어려움이 있다고, 모든 기업을 찍어버릴 수야 없지 않은가. 기대효과가 불확실한 경기부양보다는 기업금융의 활성화를 통한 선택과 집중이 더욱 절실하다.
3년 전 우리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 되었던 그 많은 부채는 지금 어떻게 해결됐는가. 금융권을 맴돌며 종금사와 투신사, 은행을 차례로 멍들게 하고, 부실채권만 누적되었을 뿐 아직도 근본적으로 해결된 게 별로 없다.
그 위기의 근본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역경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열매를 맺지 않는 한,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열매를 맺게 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무화과를 제대로 선별하고, 거름을 듬뿍 주어야 한다.
정갑영ㆍ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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