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서울역에서 목단강(牧丹江)행 열차의 맨 앞칸에 타고 밤새 경원선을 달린다. 캄캄한 새벽, 원산 교외 안변역에서 함경선과 동해북부선이 갈려 뒤칸은 북쪽, 앞칸은 남으로 달린다동틀 녘 통천 장전을 지나 아침 8시 양양에 닿는다. 다시 목탄버스로 갈아타고 먼지 나는 자갈길을 하루 종일 달려 강릉에 닿으면 저녁 5시. 재경강릉시민회가 발행한 '강릉 사람들'이란 책자에서 읽은 1940년대 초 서울 유학생의 귀성 추억담이다.
■어떤 이는 겨울방학을 맞아 강릉행 시외버스를 탔다가 당한 고초를 털어놓았다. 종로 3가를 떠난 버스는 가는 눈발 속에 안흥 문재, 대화 전재, 진부 속사리재를 무사히 넘어 곧 강릉이겠다 했다.
그러나 대관령에서 동티가 나고 말았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버스가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함박눈 속에 날은 저물고, 달리 방법이 없어 대관령 아흔 아홉 구비를 걸어서 강릉에 도착하니 두 귀가 동상으로 부어 올랐다.
■그렇게 귀성했다가 방학이 끝나도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큰 눈이 내리면 한달 씩 대관령이 막혀 3월 새 학기에 등교한 기억도 있다.
대관령 정상에서 버스가 고장이라도 나는 날이면, 조수나 운전사가 강릉까지 부속품을 사러 간 사이, 길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무한정 기다리는 일도 많았다.
아예 배편으로 포항이나 부산까지 가서, 경부선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동선 태백선이 생기기 전의 일들이다.
■20년만의 폭설로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이 이틀간 두절돼 헬기가 구호품을 실어 나르는 소동을 보면서, 그 동안 너무 편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꼼짝달싹 못하게 된 도로에서 추위와 허기를 못견뎌 도보로 강릉에 돌아간 사람도 많았다. 강릉은 그렇게 멀고 험한 곳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그 고생도 추억이 되고 말 것이다.
대관령 고개 아래 4,000㎙길이의 터널을 뚫는 공사가 올 연말에 완공된다. 대관령의 마지막 추억을 오래 간직 시키려는 눈이었나.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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