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모(53)씨는 작년 3월 가입한 일산의 조합아파트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결혼을 앞둔 아들(27)을 위해 위치도 좋고 값도 일반 분양아파트보다 싼 조합아파트에 가입했건만 가입비 500만원은 물론 자칫하면 중도금 4,500만원까지 몽땅 날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김씨 등 조합원 400여명이 가입한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 삼성탄현주택조합이 지으려는 아파트는 당초 2002년 8월 입주 예정이었지만 인근 군부대의 동의를 얻지 못해 아직 착공조차 못한 상태다.
군부대측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인 아파트 부지(1만1,000평) 인근에 사격장이 있어 건물 높이를 3층 이하로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합아파트 피해 잇따라
조합비 500만원을 포함, 3,500만~1억여원씩 모두 130억원을 시공사인 삼성중공업 계좌로 납부한 조합원들은 최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삼성측에 조합비 등의 전액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측은 조합원들이 낸 130억원은 이미 토지매입비와 설계비로 사용됐고 회사는 시공만 대행한다는 원칙적인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지를 매입하지 않고 조합원 1,246가구를 모집한 일신건영주택조합은 작년 3월 착공 예정이었지만 부지 2만5,000평 가운데 무연고 토지 180여평을 매입하지 못해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조합원 400여 가구를 모집한 양우조합주택도 토지매입이 지연되면서 2002년 완공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특히 건설업체마다 경기불황으로 부지 매입과 건축비 확보가 쉽고 미분양 위험이 없다는 장점 때문에 조합아파트를 선호하는 추세여서 유사 피해사례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주택건설촉진법
이처럼 조합아파트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현행 주택건설촉진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주촉법 제44조에 따르면 건설업체는 토지소유권을 완전히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행사를 앞세워 지역조합을 구성, 관할 시장ㆍ군수의 조합 설립인가만 받고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건축허가는 물론 사업승인조차 받지 못해 장기간 착공이 지연된 상태에서도 조합원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정기적으로 납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조합아파트는 대한주택보증의 분양보증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시공사가 부도가 나면 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도 크다.
고양시 조동창 주택과장은 "주택건설촉진법상 부지 확보 없이도 주택조합 설립이 가능해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무주택 서민의 주택마련을 위해 도입한 조합주택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주택조합 설립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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