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댓 살 된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무대 위의 피에로가 웃는 녀석들을 노려보며 짐짓 화나서 삐친 표정을 짓는데도 웃음은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폭소가 터진다.러시아 광대극 '리체데이'를 공연하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은 웃음바다다. 대사는 없지만 신나는 음악을 타고 이어지는 장면에 억지로 웃음을 참다가는 병이 날 지경이다.
12명의 광대들은 어수룩한 몸짓과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재미난 사건들을 펼친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 몇 가지를 보자. 튀튀(발레복)를 입고 발레를 하던 광대는 튀튀의 천 조각을 하나씩 뜯다가 커다란 엉덩이를 불쑥 드러내고 만다.
화들짝 놀란 이 친구는 아랫도리 털까지 떼어놓고 가는데, 다른 광대들이 그게 뭘까 한참 들여다보더니 대머리 친구의 머리에 붙여준다. 기상천외한 재활용(?)이다.
모자를 발로 차올려 쓰려고 애쓰다 옷까지 홀랑 벗은 광대가 몸을 가린 천을 내렸을 때 모자는 엉뚱하게도 고추에 걸려 있다.
멋쩍게 '아하하하'크게 웃고 후닥닥 퇴장하는 이 친구의 알몸 뒷모습이 우습고 서글프다. 불쇼를 하러 나온 광대는 어설프게 횃불을 휘두르다 겨드랑이를 덴다.
그가 성공한 묘기는 어처구니 없게도 횃불을 꺼뜨리는 것이다.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친구들 곁에 나란히 서고 싶어서 온 몸을 비틀어 틈새를 비집으며 무진 애를 쓰는 불쌍한 광대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24개의 단편이 이어지는데, 하나 같이 재미있다. 그런데 한참 웃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슬프기도 하다.
바보스런 광대들의 과장된 연기는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보내는 정다운 미소처럼 보인다. 거기엔 연민이 배어있다.
아무리 애써도 되는 게 없는 초라한 삶, 가끔 찾아오는 의기양양한 순간, 고단한 생활 속에 보일락말락 박혀있는 작은 기쁨.. 그런 단편들이 기발한 상상력이 빚어내는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나면서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리체데이'는 즐겁다. 관객들은 박수 치고 소리 지르고 웃는다. 힘껏 휘두르는 물 적신 광목천에 물벼락을 맞거나, 파리 잡는다며 객석을 휘젓는 광대들의 망치(물론 솜망치다)에 맞는 봉변도 즐겁기만 하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거대한 색색깔 풍선이 날아들며 공연이 끝날 때, 객석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공을 갖고 노느라 난장판이 된다.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아쉬운 것은 24개의 단편 중 슬픈 이야기가 빠져 있는 점이다. 리체데이의 레퍼토리에는 웃다가 생각하니 슬픈 것 말고 처음부터 아주 슬픈 음악과 슬픈 줄거리로 된 것도 있는데, 이번 서울 공연에는 갖고 오지 않았다.
14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월~토 오후 3시ㆍ 7시30분, 일 오후 3시ㆍ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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