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 완벽한 변신. 이런 것도 한 두번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 이 여우에게 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배우 전도연을 보면 그렇다. 맑고 아름다운 피부의 '미인형' 이기는 하지만 진짜 '미인' 은 아니다. 영화 경력이 그리 화려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전도연은 심은하와 더불어 감독들의 캐스팅 희망 1호이다.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배우의 모든 것을 보여주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상대역인 설경구도 동의한다.
"자연스럽게 영화 안으로 숨어드는 배역이지요. 전도연씨가 그래서 더 힘들었을 겁니다"
'해피 엔드' 에서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정부를 만나러 나가는 기막힌 캐릭터를 능란하게 소화했던 전도연을 기대한다면, '나도 아내가.' 에서 그를 보고는 실망할 지도 모른다.
영화속 원주는 지난 여름 유행했던 9부 바지(웬만한 8등신이 아니고는 매력적으로 보이긴 힘들다)에 티셔츠를 즐겨 입는, 귀염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매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저 그런 학원 강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수를 들고 마시다 버릇처럼 무심하게 화분에 물을 주는 장면이나 봉수에게 저녁약속을 거절 당한 뒤 현금인출기 앞 감시카메라에서 봉수를 향해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전도연답다. 그렇게 그는 영화에서 숨듯 드러났고, 드러나는 가 싶으면 숨어버렸다.
정말 여우같다. '접속' 에서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 외로워 보였다면, '나도 아내가.' 에서는 사랑을 준비하는 풋풋함이 있다.
그의 이 '여우적' 기질은 영화를 고르는 안목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들의 천국' '사랑의 향기' '사랑은 블루' '젊은이의 양지' '사랑할 때까지' '간이역' '달팽이' 등 TV 드라마로 '탄탄한 연기자' 라는 평가를 얻기는 했지만 '1등' 자리는 아니었다.
TV보다 한 수위로 치는 영화에서 그는 비로소 1등이 되었다. 1997년 '접속' 을 시작으로, 1998년 '약속', 1999년 '내 마음의 풍금', 2000년 '해피 엔드' 4편으로 '최고' 자리를 날름 집어 삼켰다. "대단한 스토리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섬세한 얘기, 그래서 감정의 흐름이 느껴지는 시나리오를 좋아한다."
그의 시나리오 선구안은 소문났다. 소설처럼 한번 읽어보고 작품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제일 마음에 드는 영화는? "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거든요.
상대역도 작업중인 사람이 제일 좋고, 영화도 그래요. 욕심이 많아서 그렇죠, 뭐" 상투적인 대답에 '자기 험담'을 약간 곁들이니 그만의 독특한 생각으로 탈바꿈한다.
어떤 역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적이 없는데, 최근엔 배역 욕심이 하나 생겼다.
섬세한 스토리가 세련되게 처리된 '화양연화' 를 흥미롭게 보았지만 정작 해보고 싶은 것은 '와호장룡'의 장즈이가 맡은 '용(龍)' 역할이다.
감정의 흐름을 조절하는 '화양연화' 식 연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것일까. 본격적인 '몸'의 연기로 도약하려 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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