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공개된 안기부 선거자금 지원 명단은 당시 구 여권이 선거 판세, 당내 계보 등의 기준에 따라 의원별로 선거자금을 차등 지원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지급액수가 일반적으로 당에서 분류해온 기준을 넘어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자금을 관리했던 강삼재(姜三載) 의원과의 친소관계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우선 당시 박빙의 승부를 벌였던 수도권 경합지역과 YS에 대한 지지도 하락으로 자민련과 무소속이 강세를 보였던 대구ㆍ경북 지역은 많은 후보가 2억원 이상의 고액 지원을 받았다. 서울은 당시 전략지였던 이세기(李世基ㆍ성동을) 후보에게 3억5,000만원이 투입되는 등 21개 선거구에 실탄이 지급됐다.
반면 당시 신한국당의 열세지역이었던 호남권의 경우 37개 선거구 가운데 12개 선거구에만 지원금이 내려갔고 액수도 적었다.
계보별로는 당시 당을 장악했던 부산 민주계 후보들이 대거 지원을 받았고 지원금도 대부분 2억원이 넘어 가장 후한 대접을 받았다. 민주계 핵심라인이었던 박관용(朴寬用) 후보는 텃밭인데도 4억원이 지원됐고, 총재비서실장이었던 박범진(朴範珍) 후보는 5억5,000만원이나 받았다.
'김현철계' 후보들은 이성헌(李性憲) 후보에게 5,000만원이 지원되는 등 일부만 소액을 받았을 뿐 명단에서 아예 빠진 후보들도 많아 '비선라인'을 통해 별도의 '실탄'이 투입됐을 거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리스트에 나타난 후보별 지원액수가 천차만별이고 같은 지역에서도 액수가 크게 차이가 나거나 상대당 후보에게만 지원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지급 과정에 강 의원의 독자적 판단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실무자가 이렇게 복잡한 지급기준을 만들 수는 없다"며 "당시 당뿐만 아니라 청와대 정보도 갖고 있던 강 의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강 의원과 가까웠던 하순봉(河舜鳳) 윤한도(尹漢道)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경남지역이었음에도 각각 6억8,000만원과 4억원을 받았다.
강 의원 자신은 가장 많은 15억원을 받았다. 민주계 비주류인 김덕룡(金德龍) 의원계 후보들에 대한 지원이 박했던 것도 민주계의 '내부견제' 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서울 송파갑처럼 신한국당 후보와 상대당 후보에게 동시에 지원금이 가거나 종로처럼 오히려 상대당 후보에게만 지원된 경우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지원으로 보인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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