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예산에서 불법 전용된 총선자금의 구체적인 지원내역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안기부 자금인 줄 몰랐다고 밝히고 있으나 불똥이 어떻게 번질지 긴장하는 모습이다. 지원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거나 지원 규모가 다르다고 해명하는 인사들도 있고 안기부자금인 것이 확인되면 반납하겠다는 인사도 나왔다.■"黨 실탄지원으로 생각"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안기부 선거 자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보도된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중앙당의 '실탄지원'으로 생각했을 뿐"이라며 "검찰이 정부의 돈을 직접 도둑질해 쓴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6억8,000 만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된 하순봉(河舜鳳) 부총재는 "당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돈의 출처를 묻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
2억8,000 만원이 지원된 것으로 알려진 김기배(金杞培) 사무총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 사장이 외부에서 돈을 구해 와 월급을 주면 어디서 구해왔느냐고 묻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 뒤 "마치 안기부 돈을 직접 받은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명백한 명예 훼손"이라고 비난했다.
4억3,000 만원으로 알려진 서청원(徐淸源) 의원은 "당에서 줘 받았지만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실제 지원 금액이 공개된 것 보다 적다는 주장도 나왔다. 4억3,000만원을 받았다고 지목된 박희태(朴憘太) 부총재는 "당에서 4~5차례 지원을 받았지만 4억여원이나 되지 않는다"며 "정치도의상 당 후원금을 이렇게 공개할 수 있느냐"고 격분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곤혹 이적 의원들 "안기부 돈인줄 몰랐다"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현정권 출범 이후 민주당ㆍ자민련 등 여당으로 옮긴 의원들도 명단이 공개되자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중앙당 자금 지원은 시인했으나 한결같이 "안기부 돈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특히 민주당 강현욱(姜賢旭) 의원은 "당시 받은 선거자금에 법률상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의원 세비를 들여서라도 당연히 국고에 반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기부 자금 2억3,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강 의원은 "중앙당에서 통상적으로 지급하는 자금으로 알고 받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강 의원의 '자진 반납' 의사 표명이 민주당 지도부와의 상의를 거쳐 나왔는지가 관심이나 민주당 김중권(金重權) 대표는 "강 의원과 국고 환수 문제를 상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대다수 입당파 의원은 리스트 공개에 불만을 터뜨리며 당 지도부를 원망했다.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이완구(李完九) 송광호(宋光浩) 의원 등도 리스트에 각각 2억원 가량의 돈을 받은 것으로 나오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들은 대체로 "중앙당으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았지만 정당한 돈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김광덕기자
■당시 野후보들
명단에는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 박정수(朴定洙) 하근수(河根壽), 자민련 이재창(李在昌) 조순환(曺淳煥) 후보 등 당시 야당 소속으로 출마했던 5명의 후보가 포함돼 있다.
이들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금수수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2억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돼 있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측은 "여당 후보인 이명박(李明博) 후보에게는 한푼도 지원하지 않고 당시 출마도 하지 않은 정인봉(鄭寅鳳) 후보에게는 3,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되어있는 등 자료의 신빙성 자체가 문제"라며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5대 총선 당선 후 신한국당으로 옮겼던 한나라당 이재창 의원측은 "선거 당시 지원은 말도 안된다"며 "다만 신한국당 입당 후 지구당 개편대회 비용으로 중앙당이 지원한 자금이 안기부 자금이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명단에 없는 舊與 중진들
명단에는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이한동(李漢東) 총리,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대행, 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정형근(鄭亨根) 의원 등 여야 중진들이 빠져있다.
특히 공동여당 지도부와 여권의 정계개편 파트너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빠진 데 대해 야당측은 "안기부돈을 받았는데도 고의로 누락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당사자들은 "안기부돈을 받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정가 관계자는 "정치적 위상면에서 강삼재(姜三載) 의원으로부터 돈을 받을 급이 아니었든지, 받았더라도 계좌추적이 안돼 명단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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