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과 허전함을 남긴 채 요란했던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 아침을 맞으면서 나름의 각오와 기대를 안고 새해 아침 일찍 목욕탕을 찾았다.탕 속에서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를 떠올리니 이런 저런 기억이 수증기의 포말처럼 피어오르는가 싶으면 어느새 사라지고 한다.
동시에 새해의 다짐에 앞서 몸을 정갈히 해야 겠다는 이런 엄숙함이 단지 작심삼일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올 한해 내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다시한번 품어보았다.
한참 목욕 중에 곁에서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어르신을 보고 짐짓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 노쇠한 모습으로 몸을 가누기도 버거운 듯한 노인이어서 였다.
나는 그런 분의 부탁에 일순 머뭇거린 스스로의 몰염치에 부끄러움도 함께 느껴야 했다.
"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해 또 올해 목욕을 왔네. 미안하네." "아이 무슨 말씀을 요, 괜찮습니다." "올해 몇인가?" "예, 돼지띠입니다." "응, 우리 둘째딸 보다 한 살 적군 그래."
낯선 할아버지의 등을 밀면서 온갖 상념에 젖어 든다. 할아버지의 얇디 얇은 등줄기, 삶의 파편들이 군데군데 자국으로 남아 있는 모습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절절히 채색돼 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금년으로 5년째. 그간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 우리 아버지. 살아생전 아내를 고생만 시켰다는 자괴감에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은 남은 삶의 의욕과 평상심을 잃게 만들었다.
급기야 아버지는 지난해 추석 이후 노인성 치매 증상을 보여 지금까지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예전의 기억을 상실한 채 누워 계시는 아버지 모습이 눈에 밟혀 온다.
나 또한 어머니를 잃은 슬픔으로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는데 아버지마저 기억의 저편에서 건너오시지 못하고 있으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새해 아침, 이름 모를 어르신의 등을 밀어주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부모님의 은혜. 고통과 헌신, 그리고 무한대의 무조건적 사랑. 내가 그 은혜의 반에 반이라도 답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면 부끄러워 진다.
날로 커 가는 자식들에게 쏟는 내 정성과 애정의 반이라도 황망히 왜소해져 가는 아버지께 바쳐야겠다.
그래서 아버지가 하루빨리 기억의 상실에서 벗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제 자리로 돌아와 든든한 집안의 어른이 돼 주시길 새해 소망으로 빌어본다.
황규환 경기 안산시 고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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