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20년만의 폭설을 '재해'로 키웠다.7일 아침부터 전국이 눈에 뒤덮이면서 도처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유관 부처의 책임자들은 출근도 하지 않았는가 하면, 일부지역에서는 도로가 온통 얼어붙었어도 휴일이라는 이유로 손들을 놓았다.
복구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피해 통계조차도 신속하게 이뤄지지않아 폭우나 태풍 등 다른 자연재해 때와는 완연히 다른 '늘어진' 모습을 보였다.
■무성의 무책임 행정
중앙재해대책본부는 6일 저녁부터 비상대기하면서 눈이 내리자 제설작업을 벌이도록 지방자치단체와 한국도로공사 등에 지시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대전시의 경우 7일 오후까지 제설작업에 나선 공무원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옥천고개 등의 제설용 모래주머니도 사용되지 않은채 그래로였다. 제설작업이 차질을 빚자 하루종일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100여건이나 발생했고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경기 고양시도 "1,000명의 인력을 동원, 제설작업에 나섰다"고 밝히고 있지만 눈이 치워지지 않아 서울로 운행하는 3개 노선의 버스가 운행되지 못했고 승용차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로 차를 몰고간 주민 김경화(37ㆍ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씨는 "고양 구간에는 눈이 쌓여 있는데 서울 시계로 들어서니 도로가 깨끗했다"며 "인구 86만의 도시에서 발생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질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 춘천시도시내 중심부인 중앙로와 온의동 후평동 등도 제설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는 뒤늦게 군으로부터 장비를 지원받아 제설작업을 벌였으나 이미 두텁게 쌓이 눈을 치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건설교통부는 도로와 항공이 전면 마비되다시피한 상황에서도 장관부터 담당국장까지 대부분 출근하지 않아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농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부족했다. 충청과 강원지역에서 제설 인력과 장비가 도로에만 집중 투입돼 축사와 비닐하우스의 붕괴를 막지 못했다.
■ 원인
가장 큰 원인은 재해 당국의 떠넘기기식 행정이다. 폭설에 민활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중앙재해대책본부는 "기상청이 폭설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건교부는 "주무부서가 아니다"라고 책임을 미루고 있는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집어준다.
당국의 무사안일도 문제다. 태풍이나 홍수 때면 가동되는 유관부처 공동대책반이 운영되지 못하고 지자체에서 공무원들이 조기에 제설작업에 나서지 못해 피해가 악화했다.
이밖에 지방과 중앙 사이의 피해집계와 보고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필요한 곳에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지 못했다.
제설 인력과 장비가 이번 같은 대폭설에 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5개군의 국도 510㎞를 관리하는 대전지방국토관리청 보은국도유지사무소의 경우 제설인력이 운전사까지 포함해 40명에 불과하고 제설차도 2대가 고작이어서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김포공항에서는 공항공단측이 7일 새벽부터 제설작업을 벌였으나, 항공기 동체에 쌓인 눈과 얼음을 녹이는 제빙작업(De_Icing)이 지연, 8일까지 무더기 결항사태를 빚었다.
제설작업이 길어지면서 제설용액도 동이나 폭설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음을 드러냈다.
■ 문제점과 대책
방재전문가 이규학(60ㆍ생명문화운동 의장)씨는 1999년 정부구조조정 당시 방재부서인 행정자치부 민방위재난통제본부가 대폭 축소되면서 재난관리능력을 갖춘 기구가 없는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씨는 "미국 대통령 직속 연방재난관리청은 2,700여명의 전문가가 있는 국가기간부서"라며 "폭설 등 재난에 대비한 효과적인 시스템 구축하고 예산도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방재공학연구센터 윤명오(43) 소장은 "제설작업이 전시성으로 이뤄져 주요도로만 눈을 치우고 이면도로를 방치, 교통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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