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개편에 따라 금융지주회사에 합병되는 한 시중은행장이 퇴임식장에서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다. "경영개선 약정을 하루 아침에 완전히 무시한 경직되고 일방적"운운하며 울분을 토했다는 것이다."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모든 한(恨)은 가슴으로 삭이는 수 밖에 없다"고 까지 했다니 그의 쌓인 불만을 짐작할 만 하다.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은행ㆍ기관장이 물러나면서 이런 식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모양새도 좋지 않고, 설득력도 별로 없어 보인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소신을 폈다 해도 부실은행으로 낙인찍힌 결과적 사태에 대해서는 책임을 감수하는 것이 기관장으로서 온당한 처신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하는 까닭은 그의 지적이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정책의 파행과 국내외의 비판 시각이 거기에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오죽하면 경제관료 출신인 그가 이임식 석상에서 정부에 대놓고 한풀이를 하기에 이르렀겠는가.
그 동안 금융 구조조정에서 정부의 오락가락 말 바꾸기와 우왕좌왕한 졸속의 사례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말로는 자율에 맡긴다면서도 실제로는 정부가 강제하고, 그나마 정면돌파를 겁내 노조측과 이면계약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어떤 비난을 받아도 싸다.
심지어 대내외에 공표한 금융지주회사 일정표까지도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했으니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은행권의 원성을 사고 있는 부실기업 회사채 할당 조치만 해도 그렇다. 언제는 부실기업을 도려내라고 하더니, 이제는 부실기업의 회사채를 무조건 인수하라며 천편일률적인 명령조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은행재무 건전화를 요구하니 후안무치도 정도문제다.
이러고도 은행들의 적극 협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금융 구조조정 작업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이번 2차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 하더라도 갈 길이 멀다.
한국의 금융 구조조정은 이번이 끝이 되어서는 안되며, 공적자금의 증편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내외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원칙 있는 전략과 유연한 전술로서 정부와 정책의 권위를 조기에 회복시키지 않는 한 구조조정 작업은 소리만 요란할 뿐 내내 뒤뚱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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