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강석경(50)씨는 5년전부터 경주에 살고 있다.등단 28년, '숲 속의 방'을 거친 후 인도와 티베트를 방랑하던 그는 이제 경주를 자신의 글과 삶의 터전으로 굳힌 듯하다. 그가 펴낸 산문집 '능으로 가는 길'(창작과비평사 발행)은 거대한 왕릉들이 마치 이웃집 담처럼 둘러서 있는 경주를 천천히 산책하며 건져올린 사유의 모음이다.
"벌써부터 자기 문명에 이질감을 느끼고 구원이란 화두를 들고 헤매 다니다가 거대한 알 같은 고분들이 널려 있는 경주로 불현듯 돌아온 것은 우연한 회귀일까?"
강씨는 지구문명의 여백처럼 되어 있는 인도를 떠돌며 10년 전 '인도기행'을 쓰고, 티베트의 경이 앞에서는 소설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1996)를 썼다면 "나의 전생 같은 유목민의 흔적이 묻힌 신라의 능들, 경주는 역사 속에서 되찾은 이상향"이라고 말한다. 거기서 그는 세속의 덧없는 인연들을 끊고 "달팽이처럼" 칩거했다.
그는 경주의 고분들에서 문명과 집착, 유목민과 민초들의 꿈, 고독과 위로,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모두 보았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무덤 오릉에서 철기로 상징되는 인류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사색하고, 헌강왕릉의 무덤을 통해서는 간통하는 아내를 용서한 처용의 의연함과 오늘날까지 여전히 씨성(氏姓)에 집착하는 문중사회의 완고함을 비판한다.
미추왕능과 황남대총, 천마총으로 이루어진 대능원에서는 북방 유목민 후예로서의 신라인들을 그리며 대륙의 초원을 넘나드는 상상력을 펼친다.
왕릉들에 얽힌 사연을 통해 이처럼 과거의 사연을 더듬으며 현재의 세태를 꼬집던 그는 신라 유일의 부부합장묘인 흥덕왕릉에 이르러서는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그리움과 영혼의 합일을 추구하기도 한다.
치밀한 사료 추적을 바탕으로 고금의 철학과 노래까지 아우르며 고대의 선조들과 대화하는 그의 글은 동갑내기인 사진작가 강운구씨의 사진과 어울려 한껏 빛을 발한다.
이미 '경주 남산' '사진과 함께 읽은 삼국유사' 등의 작품집을 통해 경주와 인연을 맺은 강운구씨도 이번 산문집에 실린 능들의 사진작업을 위해 수십 차례 경주를 찾아 작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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