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절차를 밟으라는 연락을 받고 나서 사실은 기쁨보다 걱정이 더 많았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설레임보다 더 컸었다.그리고 그때 나는 한 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하며 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연락을 받고 한동안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뒤 10년 내내 해직이 부당하다고 외치며 복직을 요구하다가 막상 발령을 내주니 갈등을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고, 대의로 보나 명분으로 보나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에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사직서를 제출하고 복직을 기다리는 98년 여름 몇 달은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초조해 하였다.
2학기 개학을 하고 나서도 공연히 발령을 미루며 뜸을 들이다 9월 하순 충북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시골 중학교로 부임하던 날 아침이었다.
새로 오는 선생에 대한 인사를 한다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집합해 있었다. 먼저 교장선생님이 조회단에 올라섰다.
그러니까 전체 학생을 지휘하는 학생이 군대식으로 뒤로 돌더니 "교장선생님께 경례!"라는 구호를 외치자 전교생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하며 교정이 떠나가게 충성하고 구호를 외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충효라는 소리였는데 순간 나는 그렇게 들었다. 경력에 대한 소개가 짧게 진행되는 동안 나는 저 거수경례를 받아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사회를 보는 교무부장이 "대대장!" 하며 부르자 지휘하는 학생은 알았다는 듯이 다시 큰 소리로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를 명령했고 학생들은 또다시 일제히 구호를 외치며 거수경례를 하는 것이었다.
치마를 입은 어린 여학생들의 군대식 거수경례를 받으려다가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곤 "여러분 우리 다시 인사합시다" 하고 말했다. "내가 안녕하세요 할 테니 여러분들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세요.
" 이렇게 말하곤 다시 인사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그렇게 인사해 본적이 없어서 그러는지 잘 하지 못했다.
몇 번인가 다시 안녕하세요를 하자고 한 뒤에야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나는 이렇게 인사말을 하였다.
"여러분들 곁에 오고 싶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꼭 10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고 많이 어려웠고 많이 기다렸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여러분들 편에 서서 여러분들을 위해 일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도종환 시인ㆍ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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