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정보전쟁이 2차전에 돌입했다. 국제연구컨소시엄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 벤처기업 셀레라 지노믹스사가 사이언스에 연구결과를 독자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 게다가 논문의 근거자료인 염기서열에 대한 접근도 제한했다.지난 해 6월만 해도 프란시스 콜린스 HGP 책임자와 크레이그 벤터 셀레라 대표는 클린턴대통령 양 옆에 서서 "1차 초안을 공동발표하겠다"고 두 손을 맞잡았지만, 정작 초안의 공개를 앞두곤 공조가 깨졌다.
영(네이처)-미(사이언스) 과학저널 사이의 공방이 오가고, 공개된 염기서열을 토대로 유전자 기능분석에 돌입한 연구자들의 비판도 거세다.
HGP는 이미 염기서열을 유전자은행(Gen Bank)에 공개해 왔고 과학저널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다.
'국제컨소시엄과 공동발표' 약속파기
'접근제한'에 과학자들 "연구저해" 반발
그러나 셀레라는 지난 해 12월 사이언스에 독자발표를 전격 선언했다. 12월 6일자 사이언스는 셀레라와 연구결과 공개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인간게놈 염기서열을 유료로 판매해 온 셀레라사는 31억 쌍에 이르는 인간게놈 염기서열 중 100만 개 서열을 연구자들이 다운 받을 수 있고 연구나 논문발표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 이상을 다운 받으려는 연구자들은 정보를 재배포, 공표하지 않는다는 등의 계약을 셀레라와 맺어야 한다. 유전자 기능 규명에 돌입한 포스트게놈시대에 연구자들이 정보제공자와 별도의 계약을 맺어야 하는 걸림돌이 불거진 것이다.
지난 달 14일자 네이처지는 "셀레라와 사이언스간 협의는 과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면서 근거자료에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케임브리지대 마이클 애쉬버너 박사의 말을 인용, "유전정보원이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셀레라-사이언스의 협정을 가장 문제삼는 것은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자들. 한 개의 유전자 기능을 규명하는 연구자에겐 별 문제가 없지만, 컴퓨터를 이용해 대량의 유전정보를 비교ㆍ분석ㆍ통계화하는 생물정보학자로선 이같은 제한이 연구를 가로막는 일이다.
영국의 생물정보학자 어윈 버니 박사는 동료들에게 E메일을 보내 사이언스지에 항의메일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세계 연구자들이 염기서열을 공개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여 싸워왔는지"를 상기시키며 생물정보학은 이런 공개원칙에 의해 싹튼 학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논문의 목적 자체가 이를 근거로 더 나은 연구가 가능토록 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학문의 원칙을 흐려놓은 사이언스를 강하게 비판했다.
셀레라 지노믹스는 10여 년간 공공컨소시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인간게놈 연구에 속도전을 일으키며 연구결과 발표를 2년 이상 앞당긴 주역이다.
셀레라사가 무서운 속도로 염기서열을 밝히고 상업화하면서 유전정보 특허논쟁도 불붙었다. 그러나 세계 특허청들이 기능이 규명되지 않은 염기서열만으로는 특허화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고 지난해 6월 셀레라와 공공컨소시엄이 공동발표를 선언함으로써 경쟁은 사그러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익 창출의 욕구를 막을 길은 없는 것같다. 셀레라가 자사의 연구결과에 기득권을 고집하면서 이 같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중요한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할 경우 그 기초가 된 염기서열정보에 대한 권리를 놓고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셀레라가 게놈연구에 득인가 실인가를 따지기는 더욱 복잡해졌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