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선거자금 사건 수사가 불거진 뒤 여야가 '97년 대선도 안기부 예산 유입 의혹' 'DJ 비자금 20억+α 의혹' 등을 제기하며 '대선 자금' 공방까지 벌이자 검찰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수사의 초점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본보가 "안기부, 혈세로 4ㆍ11총선 자금 지원"을 첫 보도(3일자 1면)한 뒤에도 검찰이 "공식 확인할 상황이 아니다"는 등 수사내용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도 이같은 점을 우려해서다. 정치권의 공방으로 검찰수사가 정치색을 띤 것처럼 비쳐져 자칫 수사목적 자체가 실종되는 사태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안기부의 국가예산 선거자금 전용' 진상 규명이 수사의 목적이자 방향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수사 초기 언론에서 안기부 자금에 기업자금도 섞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수사의 본류가 아니다"며 선을 명확히 그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도 "혈세를 선거자금으로 쓴 만큼 누군가 책임을 져야겠지만 관련자 사법처리만이 능사는 아니며, 다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황상 검찰수사가 안기부 예산의 97년 대선 투입 여부 등 대선자금 수사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검찰 관계자가 '현재로선' 이라는 단서를 붙였으나 "YS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도 대선자금 수사 비화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일단 진상을 규명하되 당시 권력 핵심부에 대한 사법처리는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대통령이 "시시비비는 분명히 가려야 한다"면서도 "관용할 것은 관용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상황 반전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만은 없다. 안기부가 신한국당 계좌에 입금한 940억원중 500억여원은 당시 신한국당 출마자에게 전달된 사실이 확인됐지만 나머지 400억여원의 사용처는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향후 수사 확대 여부나 사법처리 범위가 400억원의 사용처에 따라 정해질 공산이 크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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