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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술이 한국인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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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술이 한국인을 마신다

입력
2001.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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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TV 드라마를 보면서 '아, 정말 다르네. 과연 한국인들이 다 저럴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드라마는 50분 동안 진행됐는데 그 중 반 이상이 등장 인물들의 음주 장면이었다.술을 마시며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혼자 술을 마시며 인생을 한탄하며 원망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국 사람들이 술 마시는 것을 세심히 관찰하게 됐다.

한국 사람들의 음주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음주장면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도 주인공이 고민이 있거나 슬퍼하는 장면에서는 무거운 배경음악이 흐르고 마치 인생을 포기한 듯 말 그대로 '깡소주로 병나발을 불면서' 폭음을 한다.

한국시청자들도 이런 장면에 익숙해져 속상한 일이 있으면 배우와 똑같이 과음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술은 기쁨과 나눔을 상징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할 때 파티나 축제를 열 때 술은 기쁨을 나누는 가교역할을 한다.

물론 간혹 좋지 않은 일로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울한 일로 폭음을 하고 길거리를 휘청거리며 배회하거나 끝없이 술을 들이키는 사람이 있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그를 알코올 중독자로 보고 측은해 하거나 심지어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술은 맛을 음미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한국에서 술을 마실 때 '한국식 주도'를 배우는 일이 내겐 몹시 힘들었다.

내가 한 잔을 음미하고 비우는 동안 한국인 친구들은 두세 잔을 서둘러 비우고 본인의 잔이 비워지면 그 잔으로 상대에게 술을 권했다.

이런 한국식 주도는 일견 멋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여러 사람이 '속전속결'로 돌려 마시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라는 생각이다.

한국인들은 '중용'과 '절제'를 중시하는데 왜 술 마시는 일에는 그처럼 관대하고 한계를 두지 않을까.

각자의 양과 음주 속도가 다를 텐데 어김없이 술잔을 비워야 하는 회식이나 모임은 애주가라 할지라도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간간히 신문의 사회면에서 폭음과 강요된 음주가 가져온 심각한 결과를 보게 된다.

대학 시절을 생각해보면 나 역시 대개의 프랑스 학생들처럼 몹시 가난했었다. 집안의 도움없이 경제 생활을 하면서 학업도 열심히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학생들은 노래하고 술 마시는 유흥문화에 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들도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친구들과 카페나 바에 가서 흥겹게 술을 곁들인 만남을 즐기고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들의 주머니 사정에 어떻게 그렇게 술을 마실 수 있을까. 맥주 한두 잔으로 서너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절제된 음주 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회인이 되어 경제적 여유를 갖더라도 그 습관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학교가 신촌인 나는 거리에서 취객들과 자주 마주치는데 가볍게 취해 미소를 보내는 이들을 본다. 하지만 밤이 조금만 깊어지면 세상을 핑계대며 술에 취해 크게 소리지르거나 욕설을 하는 취객들 때문에 금방 불쾌해진다.

그 다음날 아침 길가 버스나 택시 정류장, 혹은 지하철 역에 지저분한 토물(吐物)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올해는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되었다.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혹은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을 주지않기 위해서라도 건전한 음주문화가 한국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혔으면 한다.

대중 매체 역시 과도한 음주문화를 경고해야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개개인의 절제와 중용인 것은 물론이다. 몇 잔의 술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지 않은가.

화브리스 고띠에 파리 10대학 한국지리학 박사과정 연세대 어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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