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아이들을 너무 쉽게 버린다.IMF(국제통화기금) 체제가 지나간 뒤 다소 주춤했던 '고아 아닌 고아'들이 다시 보호시설마다 넘쳐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제2의 경제난' 이 가장 큰 외형적 이유지만, 젊은 부모들의 책임감 결핍 등 가치관의 전도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서울시립아동상담소가 현재 데리고 있는 아이들 30여명 가운데 정작 부모가 없는 아이는 3명 뿐. 맡겨진 지 석 달이 넘도록 부모의 연락이 없으면 아이들은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돈없다… 재혼한다" 엄마.아빠가 버려
이 아이들은 엄연히 친권자가 있기 때문에 입양도 할 수 없어 부모가 다시 찾지 않는 한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
이규동(53) 상담실장은 "지난해 여기를 거쳐 보육원으로 간 520여명 중 90%이상이 부모가 있는 어린이들"이라며 "이혼도 하기 전에 미리 아이부터 맡기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고 혀를 찼다.
다른 보호시설의 사정도 마찬가지. 경기 남부아동일시보호소가 돌보고 있는 78명 대부분도 부모가 '맡긴' 아이들이다.
이 곳 관계자는 "'전세금이 없다' '혼자 도저히 못 기르겠다' '재혼 한다'는 등 갖가지 이유로 아이를 쉽게 포기하려는 부모들의 상담이 한달 평균 60여건씩 들어오고 있다"며 "이런 추세는 일년전과 비교해도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96년 4,951명이던 '요보호' 아동이 99년 7,693명으로 늘어났고 지난해 상반기에만 4,050명에 달했다. 특히 이 가운데 고아가 아닌 기아(棄兒)의 점유율이 급격하게 늘어 최근에는 최소한 20% 선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 강남보육원 황양수(43ㆍ여) 부원장은 "이혼하는 젊은 부부들이 '재혼이나 취업 등에 방해가 된다'며 아이를 서로 맡지 않으려고 법정 다툼까지 벌이다 이 곳까지 오는 경우를 보면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고 안타까워 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엔 서울 가정법원에서 이혼소송을 하던 부부가 서로 아이를 책임지지 않겠다며 그냥 사라지는 바람에 법원직원이 5살짜리 아이를 인근 파출소에 데려다 준 일도 있었다.
최근의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 조사에서도 남녀 재혼희망 회원 600명 중 59.3%가 '재혼 상대의 자녀는 키우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장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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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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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이 형제의 소망
서울시립아동상담소에 있는 우영(6ㆍ가명)이는 "누가 제일 보고 싶으냐"는 '가혹한'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다 "엄마."라고 말하고는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내 형의 손을 꼭 쥐고 있던 동생 한영(4ㆍ가명)이는 '엄마' 소리가 나오자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우영이 형제는 지난해 9월29일 이곳에 왔다. 봄부터 아빠의 일이 잘 안 돼 집안이 어렵게 되자 엄마, 아빠는 거의 매일 싸우기 시작했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조차 식어버렸다.
급기야 우영이는 외할머니댁에, 한영이는 고모댁에 맡기고 엄마, 아빠는 집을 나가 버렸다.우영이는 7월께 다시 고모집으로 옮겨 동생과 같이 살게 됐지만 두 아이를 감당하기엔 어려웠던 고모의 손에 이끌려 결국 이곳에 맡겨 졌다.
우영이는 "예전처럼 엄마, 아빠와 같이 사는 게 소원"이라며 말문을 닫아 버렸다. 이들 형제는 3개월 동안 부모가 데리러 오지 않아 곧 아동보호시설로 보내지게 된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한영이를 달래던 인준경(46) 상담원은 "어린 두 아이가 또래와 어울려 놀다가도 엄마, 아빠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굳어진다"며 "아이를 시설에 보내야 하는 부모도 사정이야 있겠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기심'이 죄없는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평생의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부모 이기심이 가장 큰 문제"
점차 심각해지는 기아(棄兒)문제에 대해 서울대 이순형(여ㆍ아동학) 교수는 "IMF 사태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실직 등 사회ㆍ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가족간의 응집력이 약해지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쇠퇴한 탓"이라고 진단하며 "무엇보다 자기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개인만 생각하는 부모들의 이기심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가정의 소중함을 인식시키는 사회적 노력과 함께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국가 차원의 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고진광(46) 사무총장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내재됐던 문제들이 최근 들어 표출되는 현상으로 우리 사회 공동선이 갈수록 황폐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부모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가상체험교육(인형을 이용한 육아일지 쓰기 등의 교육) 등을 통해 청소년 시기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의 심양금(55ㆍ여) 소장도 "시설에 맡겨지는 대부분 아이의 이면에는 빈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이기심으로 인한 가정 파괴가 원인으로 담겨 있다"며 "가정의 붕괴는 곧 사회 붕괴와 직결된다는 인식 하에 가정과 아이를 지키는 것이 삶의 기본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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