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시민단체의 기업모금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1월에 총선시민연대가 기세를 올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데 금년에는 시민운동이 그 도덕성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문제는 작년 11월 경실련이 5대 공기업을 대상으로 후원금을 요구하였고, 10월에는 그 기업들에게 기관장 판공비내역의 공개를 공식 요구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압력성 후원금 요구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보공개를 요구한 바로 그 기업으로 기부금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시민들과 언론은 시민단체의 도덕성을 문제삼았다.
대학이 기업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건물을 짓고 장학금을 제공해도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는다. 대학이 기업을 감시하는 기능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이 국고지원을 받아도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는다. 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민단체가 감시의 대상인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돈을 받으면 비판을 받는다.
시민단체도 이제는 사회의 전문기구의 하나로, 막대한 재정과 전문적인 경영관리가 필요한 조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시민단체가 회비나 넓은 의미에서의 시민재정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원칙이다. 시민단체가 아직도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을 되돌아보면, 시민단체의 시민재정 비율은 착실하게 증가하고 있다. 일부 단체는 시민재정만으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는 서구와 같은 기부문화와 시민참가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운동은 회원을 증대시키고, 시민의 요구에 호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반성해야 한다.
1998년 기업이 모두 어려워 시민단체에 대한 재정지원이 줄어들자 시민단체들은 회원증대운동을 전개하여 오히려 회원, 회비가 늘어난 단체도 있었다.
한국시민사회의 잠재력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시민사회의 잠재력에 비해 시민단체들은 충분히 자원을 동원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을 통한 시민운동, 기업에 대한 의존체질, 시민참가에 대한 불성실한 대응으로는 시민운동에 미래는 없다.
시민단체가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행위가 도덕적인가 아닌가라는 것보다는 그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를 따져야 할 것이다.
시민운동단체들도 기업이나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회기구이다. 시민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그 운영이나 재정을 시민들만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도 단순한 생각이다.
시민사회의 성장은 정부나 기업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운동의 순수성,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부행위와 정부의 보조금을, 그것을 매개로 하는 영향력의 교환 고리로부터 차단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단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공적인 자금을 지원해서도 안되며, 시민단체들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감시를 소흘하게 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사회단체지원법 의해 사회단체보조금을 제공하고 있으나 그것의 선정, 배분과 관리는 정부가 맡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영향력의 개연성 때문에 일부의 시민단체는 정부의 보조금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의 보조금지원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재원을 관리하는 시민공익운동지원재단과 같은 사회적 지원체제를 만들어 지원자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기업이나 정부의 재정기여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이며, 과도적이어야 한다. 시민재정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민운동은 시민들에게 대한 신뢰, 시민의 요구에 대한 호응,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시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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