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살벌하다. 대통령 야당총재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공격한다. 난장판이다. 상생은 이미 물 건너 갔고, 너 죽고 나 살자는 상극을 넘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공멸의 정치'로 갈 판이다. 정치가 무섭다.■정치 지도자들의 신년 휘호속에는 공교롭게도 이런 살벌함을 예감하는 대목이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신년 휘호는 행불유경(行不由徑)이다.
길을 갈 때 지름길이나 사잇길을 택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유사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정초 여야 영수회담에서 대통령이나 야당총재가 제 할 만만 하고 헤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 하다. 두 사람은 정면으로 대응했다. 곧은 길은 뜻은 좋으나, 유연함은 없다.
■더욱 희한한 것은 JP의 휘호다. JP는 조반역리(造反逆理)라고 썼다. JP는 원래 멋들어진 은유가 담긴 글을 잘 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마오쩌뚱(毛澤東)이 문화혁명 때 쓴 말, 조반유리(造反有理)를 차용해 썼다. 고답 준론적인 그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조반유리는 홍위병의 반란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뜻인데, JP는 有자를 거스른다는 뜻의 逆으로 바꿔 썼다. 지난 연말 JP가 이 글을 썼을 때, 그 뜻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JP는 엊그제 DJP 공조 복원을 선언하면서 비로소 그 뜻을 설명했다. "조반역리는 우리 당에 있을 일(강창희 의원 등의 반발)을 이미 예상하고 쓴 것이다."그러니까 이 휘호는, 의원을 꾸어 받아 교섭단체가 되는 것에 반발하는 강 의원의 행동이 이치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꾸짖음인 셈이다. 그런 이치가 있는지는 모르나, 정국 흐름에 대한 그의 예견이 기가 막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신년휘호가 고작 아랫사람에 대한 꾸짖음이라니 싱겁기 짝이 없다.
JP는 이 자리에서 묘한 말도 했다. "어떤 뱀도 자기를 보호 할 독은 있다." 알듯 모를 듯 하지만, 어떻든 '독의 용처'가 이회창 총재인 것만은 틀림없을 듯 싶다. JP가 그 연령에 왜 독을 품는지 궁금하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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