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속으로] 1월6일, 잔다르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속으로] 1월6일, 잔다르크

입력
2001.01.06 00:00
0 0

1412년 1월6일, 백년 전쟁의 영웅 잔다르크가 프랑스의 동레미에서 태어났다. 그는 1431년 열아홉의 나이로 마녀의 누명을 쓰고 종교재판에 회부돼 이단(異端) 선고를 받고 화형 당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1920년 그를 시성(諡聖)했다.흔히 '오를레앙의 성녀(聖女)'라고 불리는 잔다르크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포개지는 것은 1920년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獄死)한 '아우내 장터의 성녀'유관순(柳寬順)의 얼굴이다. 그 두 사람은 여성이었고, 10대에 나라를 위해 몸을 일으켰고, 열아홉에 참혹한 죽음을 맞았고, 죽어서는 구국(救國)의 상징이 되었다.

백년 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프랑스를 전장(戰場)으로 삼아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단속적(斷續的)인 전쟁이다.

두 나라의 왕위 계승 문제에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 지대였던 플랑드르 지방과 유럽 최대의 포도주 생산지였던 가스코뉴 지방의 지배권 문제가 얽혀 일어난 이 전쟁은, 영국왕을 지지하던 부르고뉴파와 프랑스왕을 지지하던 아르마냐크파 사이의 프랑스 내전과 겹쳐지면서, 프랑스 전역을 황폐화했다.

잔다르크가 몸을 일으킬 무렵, 프랑스의 왕위는 당시의 국왕 샤를6세가 죽으면 영국왕이 계승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킨 것이 잔다르크다. 그는 1429년 영국군에게 포위되어 있던 오를레앙을 단숨에 해방시키고 랭스까지 진격해서 그곳의 성당에서 전통적 관례에 따라 샤를7세(샤를6세의 아들)의 대관식을 거행하도록 해, 프랑스의 왕위가 영국왕에게 계승되는 것을 막았다.

잔다르크는 그 이듬해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파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진 뒤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서 죽지만, 이미 전황은 프랑스에 유리해져서 그가 죽은 지 20여년 뒤 백년전쟁이 끝났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