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론독자부는 2001년 새해를 맞아 지난해 '한국일보 시민기자'로 선정된 9명중 5명을 초청, 한국일보와 우리나라 신문이 나아갈 길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참석자들은 한국일보에 좀더 강한 비판과 고발정신을 주문하면서 "앞으로는 생활의 문제를 깊이있게 파고드는, 개성있는 신문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 참가자
강신영(姜信榮ㆍ49ㆍ케이앤씨 코퍼레이션 대표ㆍ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박용진(朴用鎭ㆍ30ㆍ민주노동당 강북을 지구당 위원장ㆍ서울 강북구 미아4동)
유석훈(劉碩訓ㆍ28ㆍ경기성남 중부경찰서 경비교통과 경장ㆍ서울 용산구 청파동1가)
유재복(劉載福ㆍ43ㆍ삼성물산 주택부문 관리팀장ㆍ 서울 강서구 등촌동)
정희은(鄭姬恩 ㆍ22ㆍ한양대 기계공학과3ㆍ서울 광진구 자양2동)
_시민기자가 된 후 생활에 변화는 없었나요.
▦강신영=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독자투고를 많이 하더니 마침내 신문1면에 진출했다'고 놀리면서 축하해주더군요. 또 킥보드 안정성에 대한 저의 투고로 인해 당국이 제품의 안전기준을 만든다는 발표가 나와 으쓱해졌습니다.
▦정희은= 대학생들은 신문을 잘 읽지않아서 그런지 제가 신문에 난 줄 모르더라구요. 하지만 함께 복지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친구들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어요.
▦박용진= 투고가 실린 후에는 부대 쪽 관계자들만 관심을 갖고 관내 유관부서에 협조 공문을 띄우는 등 부산을 떨었는데, 시민기자로 선정되니 동네 가게에서도 가게분들이 "축하한다"며 자기 일처럼 좋아하시더군요.
그날 아침 지구당에 나갔더니 동료들이 "권영길(權永吉) 당 대표도 1면에 못 나가는데, 출세 했네"라며 놀리더라구요. 비록 작은 일이라도 다수가 느끼는 불편이라면 독자투고 같은 작은 수고를 통해 꼭 시정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유석훈= 저는 시민기자로 선정된 뒤로 별명이 졸지에 '유기자'가 됐어요(웃음) 그런데 여기저기서 책을 사달라고 하고 후원금도 내달라는 전화가 오는 바람에 상금의 2~3배는 나간 것 같아요. 사실 투고로 시민기자가 되긴 했지만 민원부서에서 일하는 저는 독자 투고로 문제점들이 하루 아침에 개선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기자들이 기사를 써도 당장 바뀌지는 않잖아요. 독자들이 그런 문제가 있구나하고 알 수 있고, 문제가 서서히라도 개선된다면 투고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재복= 독자 투고에서 지적된 문제가 신문에서 좀더 발빠르게 다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상을 받은 뒤 결국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홈페이지에 잘못을 인정하는 글을 올렸더라구요.
하지만 기자들이 투고를 보고 곧바로 심층 보도했다면 북한산 돌계단에 든 비용 37억원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일란 아쉬움이 크게 남았습니다.
_한국일보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평가해주십시오.
▦박용진= 논조와 관련해 보수주의를 견지하는 다른 신문과 비교해 한국일보를 읽고나면 그래도 마음이 편하고 분한 일은 없습니다. 반면 한국일보의 '불편부당(不偏不黨)'이라는 사시가 지금 시대에도 과연 걸맞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비록 소수라도 그들을 대변하는, 자기 색깔이 분명한 신문을 만들어야 영향력도 커지고 다매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일보가 왠지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그런 점을 주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유재복= 동감입니다. 한국일보를 포함해서 전체 신문이 서로 다른 점이 별로 없어요. 어떤 식이든 개성을 개발하고 비판성이 강한 신문을 만들어주십시오. 지엽적인 얘기지만 1면에 그날의 주요 기사를 안내해주는 인덱스가 있었으면 좋겠고 독자면에 실리지 않는 투고는 인터넷에라도 띄워 독자의 참여를 더 넓혀주기 바랍니다. 기획기사에 대한 주간 예고제도 독자들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강신영= 신문 종이와 활자가 좀 개선됐으면 합니다. 제가 시민기자가 돼서 1면에 진출했는데 사진이 선명치 않아 섭섭하더라고요. (웃음) 하루 3편 정도 실리는 독자투고 수가 적은 것도 불만스럽습니다.
과거에는 거의 한 면이 독자투고란으로 활용된 적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한국일보 오피니언면의 '내 평생 잊지못할 일' 같은 난은 아주 좋아합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일, 일종의 자신의 시행착오를 전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_한국의 신문을 비판해주신다면요
▦강신영= 정치 기사가 너무 많습니다. 신문을 뒤에서부터 본다는 사람이 많아요.
정치인이 연예인도 아닌데 1면에서 5면까지 미주알 고주알 그 사람들 얘기를 신문에 쓸 필요가 있나요. 독자면에는 교수들의 글이 너무 많습니다. 대체로 독자들을 계몽하려는 태도인데 쉬운 내용을 어렵게 썼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독자들도 수준이 높아져 알 만큼 다 아는데 그런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유석훈= 저도 독자투고는 읽지만 정치기사나 칼럼은 좀처럼 읽지 않습니다. 내용이 어려울 뿐더러 소재도 가벼운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신문사를 위한 신문이 아니라 독자를 위한 신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용진= 우리나라 신문 대부분이 정부입장이나 이른바 주류층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점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소외된 사람들, 비주류들을 다루는 고정란도 있었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영미식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우리 사회가 현재 건국 이래 최대의 변환기를 맞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탈락한 노동자 농민 등 소외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신문이 담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재복= 역시 신문의 차별성 문제입니다. 신문을 비교해보면 1면의 사진 위치까지 똑같을 때가 많아요. 때로는 교과서를 놓고 말만 '아' 와 '어' 로 바꾸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현장을 취재한 기사도 적은 것 같아요. 가령 은행 파업만 해도 현장기사보다는 정부 대책 위주로 신문에 나오잖아요.
▦정희은= 이제는 신문에 한자가 줄어들였으면 해요. TV도 발달하고 인터넷에도 접근이 자유로와 젊은이들이 가뜩이나 신문을 안 읽는데 재미있는 내용을 읽다가 중간에 한자에 막혀서 못 읽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그게 알고보면 그저 사람 이름일 때도 있더라구요.
_그럼 앞으로 한국신문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유석훈= 저는 군대에서 공보관실에 있으면서 신문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때 보니 중앙지의 주재 기자들이 아침에 출근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지방지를 샅샅히 뒤져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 기사로 쓰더군요. 다 사정이 있겠지만 그러지 말고 일선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쓰는 기사가 좀더 늘어났으면 합니다.
특히 사회면 말입니다. 읽고나서 생각하고 되돌아볼 수 있게 미담기사가 많이 실리고 독자들이 살면서 느끼는 작지만 절실한 문제들이 보다 깊이 다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교통관련 업무를 맡고 있어서 그런지 도로구조의 문제점에 관심이 많고, 이 때문에 사고위험도 높은데 신문에는 별로 나오질 않아요.
▦박용진= 한전 매각 등 구조조정 관련기사를 보면서 신문이 일방적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싣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됐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양론이 엇갈리는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10년후엔 이런 논조가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어요. 어려운 일인 줄은 알지만 신문사가 전문성과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희은= 저는 공대를 다니기 때문인지 신문의 과학기사에 눈길이 자주 갑니다. 이에 관한 신문의 정보는 상당히 정확합니다. 과학 등 첨단 전문분야에 대한 지면을 늘리고 기사의 전문성도 제고해야 미래의 독자층인 젊은이들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재복=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해설 기사를 더 늘려야 합니다. TV등 다른 매체가 발달해있는 상태에서 신문이 살아남을 길은 TV나 인터넷 등에서 얻을 수 없는 깊이있는 정보, 올바른 방향성, 그리고 뒷얘기 등을 충분히 담아내는 것 뿐입니다. 그러려면 예전처럼 기자들이 속보경쟁에만 매달리지 말고 공부하고 연구해야겠지요.
▦강신영= 킥보드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일상 생활에서 '아, 저게 위험하구나'하는 문제를 신문이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지하철에 승객이 다리 죽 펴고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질 게 뻔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신문이 이런 것들을 찾아내 '좋은 세상 만들기' 에 우선적인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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