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군인이 되려는 여성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취업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이 군복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남성의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 모험심으로, 색다른 삶을 위해 등등.. 여군들은 고된 훈련과 규율, 주위의 편견을 딛고 선택한 길은 땀 흘린 만큼 보람도 크다고 말한다. 여군이 되기 위한 방법과 절차, 훈련 과정, 진로 등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해 12월 해군 최초로 여자 해군ㆍ 해병대 장교 20명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에 응시한 여성은 모두 538명이었다. 27대 1의 높은 경쟁률도 그렇지만 대다수 지원자들은 명문대 출신이거나 유수한 기업체에 취업한 재원들이어서 여군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지난해 고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여군 하사관 모집에는 156명 정원에 3,000여 명이 몰렸다. IMF 시절 당시 30~40대 1에 이르는 경쟁률에 비하면 좀 주춤한 편이지만 여군의 높은 인기는 여전하다.
사관학교에 지원하는 여학생도 부쩍 늘었다. 올해 275명 생도 중 여성 25명을 뽑은 육사의 경우 남자의 경쟁률은 10.6대 1, 여자는 17.2대 1이었다. 200명 가운데 20명의 여학생을 뽑은 공사는 남자는 7.5대 1인 반면 여자는 13.6대 1이었다. 해사도 마찬가지. 남학생이 14대 1, 여학생이 23.3대 1의 치열한 경쟁이었다.
여군 지원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보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군인을 안정적이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한 때문이다. 여기에 국방부의 여성 인력개발 방침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군의 인기는 높으나 국군에서 여군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외국에 비해 턱없이 작은 편이다. 현재 전체 여군의 수는 2,000여 명. 전체 군인의 0.3%에도 못 미친다. 여군 전통이 강한 이스라엘의 30%, 미국 14.6%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일본 3.9%, 북한 2%에 비해도 크게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국방부는 2020년까지 여군을 7,000여 명까지 늘리고 간부도 정원 대비 1.4%에서 5%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해부터 여군학사장교를 모집하고 있는 공군ㆍ해군도 올해(공군), 2003년(해군)부터 여군하사관을 매년 수십 명 규모로 모집할 예정이다.
여군을 늘리려는 정책은 무엇보다 군대가 변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백병전 위주의 전투에서 고도의 전략전술을 요구하는 하이테크전으로 바뀌면서 군인에게 요구되는 자질도 크게 변하고 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함이 군내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행정업무에 국한됐던 여군의 역할도 크게 바뀌었다. 육군의 경우 여군학교에서 16~20주의 훈련기간을 끝내고 장교나 하사관으로 근무를 시작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행정업무보다 전투병과인 보병ㆍ통신 업무를 선호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힘입어 현재 전체 17개 병과 가운데 기갑ㆍ포병을 제외한 전 병과에 여군이 고루 포진해 있다.
여군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군대를 선택해 성취 동기가 높기 때문이다. 여군학교 훈육관을 맡고 있는 최희봉(33) 대위는 "사격훈련, 체력단련 등에서 여군후보생들이 의무복무인 남성들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고 더 잘 견디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여군을 지원하려면 터프해야 하거나 뛰어난 운동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여군선발 과정에서 체력검증은 장교에만 국한해 실시하고 있다. 팔굽혀펴기 20회, 윗몸일으키기 35회, 1.5㎞를 8분 56초 안에 달려야 한다는 정도다. 하사관의 경우 체력시험이 없다. 다만 훈련을 거쳐 장교ㆍ하사관 모두 2분 안에 팔굽혀펴기 40회, 윗몸 일으키기 75회, 1.5㎞를 6분 56초 안에 달릴 수 있을 정도의 기본체력을 기르게 된다.
장교는 16주, 하사관은 20주 동안 받는 교육은 서울 용산 국방부 내 여군학교에서 이루어진다.
강의교육은 학교에서, 군사훈련 등은 별도의 훈련장이 없어 서울 인근 부대에서 받는다.
각개전투, 총검술, 제식훈련, 사격, 독도법, 진지구축 등 전술학과 문서작성, 데이터처리를 위한 정보화 교육, 안보의식ㆍ예절교육 등의 정신교육으로 이루어진다.
훈련생들은 고된 훈련보다 오히려 단체생활과 엄격한 규율을 못 견뎌하는 편이다. 최 대위는 "여성은 조직에의 적응력이나 충성심, 서열의식 등이 남성에 비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추순삼 여군학교장
지난 해 11월 여군학교장에 취임한 추순삼(44) 중령은 2,000여 여군 가운데 '넘버 쓰리'다. 올해 대령으로 진급할 예정인 그 위로 2명의 대령이 있을 뿐, 아직 여군 중에서 장군은 배출되지 않았다. 1979년 여군학교 27기로 군복을 입은 그는 21년 만에 돌아온 여군학교가 꼭 친정 같다고 한다.
1955년 육군 여군훈련소로 출발, 1990년 현재의 체제를 갖추게 된 여군학교는 1997년 공군사관학교를 위시해 사관학교가 여생도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여군을 배출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추 교장은 "여군의 임무, 역할이 달라지면서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야전 실무교육이 중시되고 있고 정보화시대에 맞는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1979년 소위로 임관해 여군단 본부대장, 육본 감찰감실 조사장교, 학생중앙군사학교 획득장교등을 거쳐 고위직에까지 오른 그는 성공 요인으로 '인내심'을 꼽는다.
추 교장은 서울 신학대를 졸업하고 군대를 지원했을 때만 해도 군인의 삶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고 한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군인이 네 적성에 맞겠다'는 친구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장교후보생 과정에 응시했다.
추 교장은 "훈련기간이나 임관 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것만 참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남성위주 사회에서 소수로서 적응하는 문제다.
"여군병과로 입대했다가 중간에 보병으로 소속이 바뀌면서 육군대학에서 보수교육을 받을 때였다. 야전경험이나 전술적 식견이 없으니 교육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같이 교육을 받는 남자 장교들은 출신별 동기모임을 가지면서 정보교환을 하는 데 나는 기댈 데가 없어 더 힘들었다."
잦은 전근, 여성에게 가혹한 근무환경이었지만 남자들 틈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군인으로서의 보람도 컸다. 추 교장은 큰 키에 훈련으로 단련된 외모에서 단정함과 절도가 배어나오지만 한편 군인답지 않게 온화한 인상이다.
알고 보니 이제 네 살 된 딸의 어머니이다. 94년 남편 한철용(54ㆍ육사 26기) 소장을 남편 육사 후배의 소개로 만나 늦은 결혼을 했다. 군인부부 가운데 두 사람 모두 최고위직으로, 이들의 결혼은 당시 화제가 되었다.
추 교장은 "이제 물러나야 할 때가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지만 후배들에게 군인의 직분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김동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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