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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음식과 세상 - 헤엄치는 생선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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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음식과 세상 - 헤엄치는 생선가시

입력
2001.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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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꼬리만 남은 생선이 눈을 끔벅거리면서 유유히 헤엄을 친다? 혹시 단골 일식당에서 이런 괴기스런 광경을 본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회를 뜨고 난 뒤라 몸통은 온통 가시뿐인데 멀쩡히 어항 속을 헤엄쳐 다니는 고기. 꼬리 지느러미를 한번 꿈틀댈 때마다 선홍빛 피로 물 속을 붉게 물들이기까지 하는 장면은 가히 '엽기적'이다.살과 내장을 다 드러낸 생선이 어떻게 살아 움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물고기는 '생물학적으로 죽은' 상태다. 다만 잔뼈 사이사이의 '신경'이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칼로 잘게 썬 낙지 다리가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요한 것은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살코기를 뜨는 기술인데 사실 그 정도는 손마디 마디의 칼자국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칼잡이(일식 조리사의 별칭)'의 세계에선 기본에 속한다.

생선의 신경은 살코기의 맛이나 질감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 신경을 노련하게 다룰 줄 알아야 비로소 베테랑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횟감 뜬 고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단순한 '눈속임'이나 '쇼'라기 보다는 좀 더 싱싱한 횟감을 내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좀 더 좋은 맛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칼잡이 세계의 투철한 장인정신을 그 속에서 읽을 수 있다.

이왕 신경 얘기가 나왔으니 '바다의 귀족'참치의 예를 들어보자. 통조림용이 아닌 횟감용 참치는 통상 원양어선에서 그물 대신 낚시로 한마리씩 잡아 올린 뒤 섭씨 영하 60도 이하에서 급속 냉동해 운송해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막 잡아올린 상태의 싱싱한 육질을 유지하기 위해 어부들이 하는 첫번째 작업은 '신경 제거'이다. 어부들은 참치를 급살시킨 뒤 '피아노 라인'으로 불리는 가늘고 긴 철심을 참치의 머리에서 꼬리까지 관통시켜 척추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신경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거한다.

이런 과정 없이 죽은 참치를 냉동창고에 넣을 경우 운송 도중 신경의 활동으로 육질이 단단해지거나 질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400톤급 초대형 원양어선이 잡아올리는 횟감용 참치의 어획량이 하루 1~2톤에 불과한 것은 이처럼 까다로운 잔손 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생선회 한 접시를 대할 때 이처럼 세심한 배려와 정성까지 염두에 둔다면 회 맛이 한결 좋아지지 않을까.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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