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속으로] 김동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속으로] 김동인

입력
2001.01.05 00:00
0 0

1951년 1월5일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이 서울에서 작고했다. 향년 52세. 김동인은 평양 출생으로 '배따라기''감자''광염(狂炎) 소나타' 등의 단편소설과 '젊은 그들''운현궁의 봄'등의 장편소설로 유명하다. 그는 이광수의 계몽주의나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카프의 사회주의 문학에 맞서서 '예술을 위한 예술'을 내걸고 탐미주의적 순수문학을 지향했다.악상(樂想)을 떠올리기 위해서 방화(放火)ㆍ시간(屍姦)과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작곡가를 등장시킨 '광염소나타'나, 눈먼 처녀 모델을 목졸라 죽임으로써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는 화가를 등장시킨 '광화사(狂畵師)'는 그의 예술지상주의가 극적으로 체현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런 작품들 속의 주인공들은 미적 영감을 얻기 위해서 때로 마약의 복용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의 예술가들을 닮았다. 실제로 김동인은 30년대의 한 때 마약에 중독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동인의 그 예술지상주의는 속이 비어 있었다. 그것이 일제 말기에 다다른 곳은 노골적인 친일이었다.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김동인은 39년에 이른바 '성전종군(聖戰從軍)작가'로 황군(皇軍) 을 위문했고, 43년에는 조선문인 보국회의 간사를 지냈으며, 44년에는 친일 소설 '성암(聖岩)의 길 '을 발표했다.

김동인이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는 그 소설들의 무르익은 구성 못지 않게 문체에 있을 것이다. 그는 작중 인물의 호칭에서 영어의 he나 she를 '그'로 통칭하고, 용언에서 과거시제를 즐겨 사용해 문장의 시간 관념을 또렷하게 했으며,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현대 소설의 문체를 개척했다.

김동인이 이광수 등의 작가와 함께 처음 사용한 3인칭 단수 대명사 '그'는 이제 적어도 문어체에서는 완전한 한국말로 뿌리내렸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