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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내사랑 피에르 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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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내사랑 피에르 퀴리

입력
2001.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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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파리의 팡테옹에는 마리 퀴리(1867~1934)와 피에르 퀴리(1859~1906) 부부가 나란히 누워있다. 1903년 앙리 베크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 위대한 물리학자 부부는 과학의 꿈을 함께 나눈 동지이자 친구였다.피에르 퀴리는 1906년 길에서 짐마차와 부딪히는 사고로 숨졌다. 당시 피에르는 마흔 일곱, 마리는 서른 아홉이었고 그들 사이에 난 두 딸은 아홉 살, 두 살이었다. 당시 퀴리 부인이 쓴 일기는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당신 없는 삶은 잔인하고,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번민이자, 바닥 없는 고뇌이며, 끝없는 비탄입니다."(1906년 5월 7일)

나중에 마리 퀴리는 남편의 전기를 썼다. 11년간 부부로 살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남편의 모습과 주변 사람들의 회고, 그가 남긴 편지와 일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다.

여기에 그들의 맏딸 이렌느가 정리한 퀴리 부부의 최대 업적인 라듐 발견 실험 일지와 남편을 잃고서 마리가 쓴 일기를 더하여 한데 묶은 것이 이 책이다.

퀴리 부인은 남편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피에르 퀴리가 과학자로서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훌륭했음을 전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부인의 명성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피에르 퀴리의 참 모습을 만나게 된다. 퀴리 부인은 남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그는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단호하게 몰두했고, 인격과 재능만을 도구로 삼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며 인류에 봉사한 사람이다. 그는 과학과 이성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에 진리 탐구에 삶을 바쳤다."

피에르 퀴리는 과학적 업적과 사회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변변한 실험실조차 갖지 못했고 연구자금이 없어 고생했다. 퀴리 부인은 남편이 겪었던 어려움을 안타깝게 돌아보면서, 위대한 생화학자 파스퇴르의 발언으로 전기의 끝을 맺고 있다.

"인류 전체에 득이 되는 (과학적) 성과들로 감동을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실험실이라고 의미심장한 이름을 붙인 성스러운 곳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그 수를 늘리고 시설을 갖추어 달라고 요구하십시오. 그것은 풍요로움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신전입니다.

마리 퀴리 지음, 금내리 옮김 궁리 발행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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