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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 영화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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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 영화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력
2001.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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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당신의 아내는 바로 옆에 있어요"떠들며 웃다가도 그가 들어오면 갑자기 긴장되는 것, 그에게 사탕 하나라도 꼭 건네고 싶은 것. 그런 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아니면 적어도 연애 감정이라도 된다. '미지의 당신' 이 '나의 당신' 이 될 때 사랑은 시작된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감독 박흥식)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이 빙점에서 얇은 막을 이루며 얼음으로 변하는 단계, 손으로 쥐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 그런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애에 관한 한 남자가 여자보다 더 확신이 강할까. 아파트 단지 내 은행출장소 직원인 봉수(설경구)는 멈춰선 지하철에서 어디 한곳 전화할 데 없는 노총각이다.

이혼한 대학동창과의 사랑도 끝내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그는 동전을 한 더미 들고 와서 바닥에 다 떨어뜨리고, 500원짜리 동전 3개를 찾지 못해 "3만 6,000원인데 3만 7,500원으로 입금해 달라"고 우기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이 여자다, 아니다, 이 여자다, 아니다." 나뭇잎을 떼며 남자는 중얼거린다.

은행 맞은편 보습학원 강사인 원주(전도연)는 좀 당돌하다. 꺼진 형광등을 갈아 달라고 그를 불쑥 학원으로 불러 들였고, 현금인출용지에 "저녁 약속 있으세요?" 라고 메모를 적어 건넨다.

원주는 생수를 마실 때면 화분에 물주는 것을 잊지 않고, 그가 잊고 간 우산을 햇볕에 말릴 줄 아는 여자다. 남자를 다시 만난 여자는 나뭇잎을 떼내며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이 남자다, 이 사람이다, 이 남자다, 이 사람이다."

이제 한국의 멜로 영화는 오히려 '일상성' 에 지나치게 결박되어 있는 듯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순애보' 등으로 이어지면서 '극적 장치'가 사라지고 대신 일상의 묘사가 나열된다.

뒷수습을 못하는 어설픈 극적 장치보다 낫기는 하지만, 일상에의 함몰이 주는 따분함을 극복하는 것은 숙제다.

봉수의 특기인 '마술' 과 '카메라' 는 현실에 발목 잡힌 영화의 몸을 한결 가뿐하게 만든다. 현실의 완고한 법칙을 부정하는 마술은 어딘가 '사랑' 과 맥이 닿아있다.

1997년 1월1일 봉수가 미래의 아내를 위해 녹화한 셀프 카메라가 사랑에 대한 봉수의 꿈이라면, 은행의 감시 카메라는 원주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현실의 큐피트이다. 비록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사랑이란 결국 느껴지고 마는 거니까.

'해피 엔드' 의 선정적 몸짓에서 얄미울 정도로 능란하게 '내 마음의 풍금' 의 소녀 같은 순수함으로 돌아온 전도연과 능청스럽게 변신한 설경구의 매력이 평면적 스토리를 능란하게 헤쳐 나간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는 제목은 이탈리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아마코드'에서 따왔다. 13일 개봉.

마술이 특기인 봉수(오른쪽)가 자신을 짝사랑하고 있는 원주를 만났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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