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은 4일 강창희(姜昌熙) 부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교섭단체 등록 날인 거부 입장을 재 확인 하자 강 부총재를 제명키로 하는 등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당 지도부의 제명방침에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강 부총재의 주장이 옳다"며 집단 반발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민주당 세 의원의 이적으로 교섭단체 희망에 부풀었던 당 지도부는 예상 밖 사태에 당황, 소장파와 개별 접촉을 하는 등 자민련은 하루종일 벌집 쑤신 듯 어수선했다.
당 지도부는 이날 강 부총재와의 관계를 조기에 정리하는 것이 났다고 판단한 듯 긴급 소집한 당무회의에서 제명을 결정했다. '배신자'라는 원색적 비난까지 동원됐다. 회의 뒤 발표문 역시 감정적 비난으로 빼곡했다. "강 부총재는 당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고 배신할 수는 없다. 당의 배신자는 당을 떠나야 한다. 당을 괴뢰정당이라고 한 발언도 취소하고 공식 사과하라."
당무회의는 "배신은 있을 수 없다"는 김종호(金宗鎬) 총재대행 등 지도부의 초강경 발언에 묻혀 "다시 한번 설득하자"는 온건론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말문을 닫았다. 한 의원은 "김 대행의 발언이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의중이라는데 뭐라고 하겠느냐"고 침묵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들은 "지도부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며 거칠게 반발했다. 정진석(鄭鎭碩) 의원은 "의원들의 동의 없이 날인된 교섭단체 등록서류는 무효"라며 "강 부총재를 제명한다면 나 역시 중대한 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당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겠다"고 덧붙였다. 정우택(鄭宇澤) 의원도 "교섭단체가 안된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왜 이런 난리를 피우느냐"며 "지도부와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성급한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커짐에 따라 제명결정이 실제 집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당헌상 의원 제명은 당기위원회와 의원총회의 결의를 거쳐 당무회의에서 최종 결정하게 돼있다. 제명을 위한 절차가 상당기간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당 문제는 당에서 알아서 하라"며 강 부총재 제명결정을 묵인했던 김 명예총재도 소장파의 반발은 의외라는 듯 이들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등 진화에 나섰다.
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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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라면 나갈수 밖에…"
강창희 일문일답
자민련 강창희(姜昌熙) 부총재는 4일 당무위의 제명 결정에 "잘못된 결정이지만 나가라면 나갈 수 밖에 없지않느냐"고 말했다. 이에 앞서 그는 의원회관까지 찾아온 당 총재인 이한동(李漢東) 총리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자회견을 강행, "교섭단체 등록서류에 절대 서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_당에서 제명을 결정했는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내 발로 당을 떠나지는 않겠지만 쫓아내면 도리가 없는 노릇 아니냐."
_향후 계획은.
"당의 결정과 상관없이 예정대로 내주 중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만나 교섭단체 등록을 위한 국회법 개정에 협조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자민련을 돕는 일을 계속하겠다."
_교섭단체 서명을 거부한 이유는.
"당이 영원히 사는 길은 정정당당한 절차로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정도를 벗어난 이런 방식은 절대 찬성할 수 없다."
_세 의원의 이적을 합당 수순으로 보느냐.
"그런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합당문제는 민주당이 알아서 하겠지만 자민련은 독자적 의사결정을 가진 정당으로서 반대 해야 한다."
이동국기자
■강창희는 누구인가
자민련 강창희(55) 부총재는 육사출신(25기)으로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부관 등을 지냈다.
보안사(기무사 전신)에 근무중이던 19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뒤 중령으로 예편, 민정당 창당과정에 참여, 조직국장을 맡았고 11대 국회 때 전국구 예비후보로 있다가 의원직을 승계 한 뒤 12대 총선 때 대전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13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3당 합당으로 지역구를 잃자 14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3선에 성공한 뒤 5선을 기록했다.
국민의 정부출범과 함께 과기부 장관으로 입각했고 사무총장, 총무 등 주요 당직에서도 빠지지 않을 만큼 JP의 신임이 각별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총리로 있던 JP의 내각제 개헌연기 방침에 김용환(金龍煥) 의원과 함께 정면 반발했고, 이후 독자노선을 걸었다.
16대 총선 직후 민주당과의 공조복원에 반대하며 사무총장에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당 총재인 이한동 총리에 대한 공개사퇴요구, 검찰 수뇌부 탄핵안 처리과정에서 6인 항명 주도 등 고비마다 JP를 곤혹스럽게 했다.
교섭단체 등록반대로 사무처 당직자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직전까지 당 안팎에서 'post JP'를 거명할 때면 1순위로 오르내렸다.
본인 역시 내심 차기 충청권 대표주자를 의식하고 있다.
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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