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조그만 땅이 필요해요
때가 될 때까지 조용히 잠들어 있도록.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물도 조금 필요해요.
메마른 몸을 부드럽게 적셔 주도록.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햇볕도 조금 필요해요
얼어 있던 마음이 따뜻하게 녹도록.
그리고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해요
조용한 잠에서 깬 꽃씨가
부드러운 몸짓으로 기기개를 켜
움이 돋고 쑥쑥 자랄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활짝 열 때까지.
■당선자인터뷰 - 최재숙씨
지천명의 나이에 신춘문예 당선의 기쁨을 안은 최재숙(50ㆍ사진)씨는 만나보니 유아교육을 전공한 박사였다.
'우리 아이 좋은 버릇 길러주는 동화' 등 베스트셀러가 된 어린이책을 쓴 저자이기도 했다.
"막상 응모해 놓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당선 통지를 받고 처음에는 실감도 안나더니 곧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밥도 제대로 안넘어가더군요"
그는 대학에서 유아교육에 관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실제 어린이들의 꿈을 길러주는 동화도 많이 써왔다.
공식 등단은 안했어도 8년 전쯤 출판사에서 근무하면서 가정방문 판매용 동화책을 여러 권 썼고, 이후에도 교육 목적을 가진 동화를 많이 창작했다.
하지만 최씨는 "이런 동화들은 그 목적성 때문에 문학적 가치는 사실상 없다"고 했다. 그가 지난해 쓴 50~60편의 동시는 이런 목적성을 접고 순수하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이제는 장성한 아이 키울 적을 생각하며 쓴 작품들이었다. 당선작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은 그 중의 한 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후에 대학원 진학, 다시 10년 후에 박사 학위를 딴 그의 이력은 신춘문예라는 또 다른 관문에 도전한 최씨의 '의욕'을 짐작케 한다.
그는 "세상일 모두가 그렇지만, 아이들 교육은 부모의 의도대로 주물러서 만들려고 하지 말고 기다리고 다독거리면서 저절로 본성이 개화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당선작에 숨은 뜻을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심사평
응모작 가운데는 아직 습작 단계에 있는 작품들도 있었으나, 대개의 작품이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동시는 동심적 감각에 비친 사물과 자연물, 생활의 모습을 노래한 시로서 서정시의 원류이기도 하다. 응모작 대부분이 이런 동시의 원칙을 지키려고 애쓴, 의욕적인 작품이었다.
마지막까지 당선을 겨룬 작품은 이해완씨의 '잊지 못할 칭찬' '달은 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걸까?'와 심효숙씨의 '물뿌리개' '풀씨', 그리고 최재숙 작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 '내 이는 단 것을 좋아해' 등 6편이었는데 역량이나 작품성으로 보아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해도 좋을 것이었다.
이해완의 시는 아동생활을 동심의 시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였고 기능이 뛰어난 작품이었는데 그 바탕은 산문시였다.
그러나 동어(童語)의 선택에 약간의 무리가 있었고, 긴 호흡에 생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다 보니 구성에서 흐트러진 점이 있었다. 지나친 익살도 작품 효과를 떨어뜨린다.
심효숙의 시는 문장의 선명도가 높고 내용의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문장 호흡이 어린이 정서에 접근하고 있었고, 리듬을 잘 선택했으므로 간결미가 또한 두드러진 것이었다.
그러나 선 외의 받치는 작품에서 생태적인 관찰 부족이 드러났다. '상추 모종', '민들레 홀씨' 등의 표현이다.
최재숙의 시는 기능과 내용면에서 뛰어나고 동시는 재미있는 표현, 재미있는 내용의 시라는 요건을 지니고 있었다. 내용이 깊으면서 생활 체험을 지녀야 한다는 동시의 요건에도 일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편 중 '꽃씨 하나가 꽃이 되려면'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당선작은 어린이의 자람, 인생의 성취, 자연과 사회의 고마움, 나아가서 어버이 사랑에 이르는 은유법의 서정시다.
동시는 바로 서정이라는 본보기를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동시는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고루 읽히는 가장 일반적인 시라는 점에서도 만족할 만하다.
/심사위원= 신현득 김종상
■당선자소감
기쁘다.
그 한 마디면 내 당선소감은 끝이다.
초등학교 시절을 빼고는 뭘 잘했다고 주는 상이라고는 받아본 기억이 없다. 반세기를 살고서 새삼 상을 받는다니 정말 기쁘다.
내 시는 읽는 사람들의 몫이므로 내가 말할 것이 못되고 어쩌다 때늦은 나이에 신춘문예라는 것에 응모하는 만행(?)을 저질렀느냐고 물으신다면 이 나이에도 어린애 마냥 남들이 인정해 준다면 기쁠 것 같아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늘 자신감이 부족하고 새로운 일 앞에서는 속으로 언제나 뒷걸음질부터 치는 나를 고삐 매어 앞으로 끌어당겨 보려고 무던히 노력해 왔다. 그런데도 문득 깨닫고 보면 또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이런 자신을 바꿔보려고 나는 때늦게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모험을 감행하였다. 당선만 되면 "나도 할 수 있어" "이만 하면 나도 괜찮아"하면서 자기최면을 걸 수 있겠다고.
그러나 응모는 했지만 "내 글 같은 걸 누가 뽑아주겠어?" 하는 마음에 기대도 하지 못했고 반쯤은 잊고 있었다. 당선통보 전화를 받고 나는 어리둥절했고 처음에는 기쁜 줄도 몰랐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도 할 수 있어!" "이만 하면 나도 괜찮아!"
열심히 돌이켜 보아도 내 인생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이처럼 기뻐서 가슴이 뛰었던 일은 생각나는 게 없다.
정말 기쁘다.
■ 약력
- 1951년 대구 출생
- 1973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 1995년 중앙대 유아교육과 박사
- 1988~99년 중앙대, 부산대 강사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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