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월4일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파리 부근의 빌블르뱅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57세였다.카뮈는 사르트르와 함께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가다. 6ㆍ25의 전화(戰禍) 속에서 '실존주의'라는 멋진 이름의 사조(思潮)와 함께 한국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카뮈와 사르트르는 그 뒤 적어도 30년 동안 이 나라에서 프랑스 문학을 대표했다. 그리고 그것이 허명(虛名)은 아니었다.
'표리''결혼'등의 에세이집으로 20대 초반부터 섬세한 산문가의 재질을 보여준 카뮈의 이름을 전유럽에 알린 것은 29세에 발표한 소설 '이방인'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뒤 법정에서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랬다고 진술하는 인물 뫼르소를 등장시킴으로써, 이른바 부조리 문학의 대명사가 되었다.
'페스트'(47)나 '전락(轉落) (56) 같은 작품들이 예술적으로 더 뛰어나더라도, 카뮈는 주로 '이방인'의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57년, 44세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카뮈의 창작물들과 철학적 에세이들은 서로 긴밀한 내적 연관을 지니고 있어서, 예컨대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가 소설 '이방인'의 짝이고, 희곡 '계엄령'이 소설 '페스트'의 짝이라면, 에세이 '반항적 인간'은 희곡 '정의의 사람들'의 짝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젊은 시절 잠깐 공산당에 적을 두기도 했지만 결국 우파로 선회했는데, 기실 그의 우파적 세계관은 초기 에세이나 소설의 섬세함과 머뭇거림 속에 이미 배태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알제리 독립 전쟁에 대한 카뮈의 침묵은, 비록 그가 고향 알제리와 그 곳의 친지들을 프랑스와 자신의 본질적 구성 부분으로 여겼다고 하더라도, 지식인의 책임을 피한 것으로 비판 받을 만하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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