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바르 전 서독 내독부 장관. 그는 동서독 통일의 기초가 된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오른 팔이었다.'동방정책의 설계사'라고 불리웠던 그는 총리실 차관으로 브란트를 보좌하면서 1970년 3월과 5월 동서독 정상 회담을 성사시킨 막후 실무 책임자였다.
그는 1972년 동서독의 대화는 물론 통일 정책과 이를 집행하는 부처인 내독부의 최고 책임자로 취임해 기본법 조약 체결 등 동서독의 화해와 협력에 크게 기여했다.
동방정책이 한창 무르익을 때인 1974년 브란트 총리의 개인 비서인 귄터 기욤이 동독의 간첩으로 밝혀져 브란트 총리가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동독군 대위였던 기욤을 적발한 것은 국내정보와 방첩을 맡은 내무부 소속 연방 헌법보호청이었다. 동독은 당시 화해분위기를 틈타 무려 1만 1,000여명의 간첩들을 서독에 밀파했었다.
이처럼 대화와 협력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내독부와, 체제와 국익수호를 전담해온 헌법보호청이라는 쌍두마차를 앞세워 서독은 동독과의 통일이라는 '동방정책의 꽃'을 피우는 결실을 맺었다.
21세기 첫 해를 맞아 한반도의 최대 이슈는 '북한'일 것이다.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에 이어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한 단계 전진할 수 있을 지 여부가 주목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제도 어려운데 남북한 문제는 시급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북한이 별로 변한 것이 없는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양보만 한다면 오히려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북 정책에 대한 갑론을박에도 불구, 변하지 않는 원칙은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민족의 절대 과제이며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든 또는 국제정세가 변하든 이 같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를 일관되게 추진할 정부의 특정기관이 존재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이전부터 우리 정부에는 대북 정책을 담당하는 곳이 통일원이었다. 통일원은 서독의 내독부를 벤치마킹했지만 역대 정권 차원에서 볼 때 실제로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해왔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간첩을 잡는 기관인 국정원은 현재 각종 남북대화에 관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남북대화에는 일정 수준의 비밀이 요구되고 이 때문에 국정원이 관여한다고 말한다.
'은둔'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차 밝은 세상으로 나왔는데 북한과의 대화에서 더 이상 비밀주의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간첩잡는 기관이 북한과 대화를 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잃어 버릴 수 있다. 대북 정책은 입안단계부터 상대방 접촉과 성사단계까지 어느 정도 투명해야 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햇볕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앞으로 민족 화합과 협력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대북 정책과 집행이 통일부로 집약되고 그 수장인 통일부 장관이 실질적으로 모든 책임을 맡아야 한다.
또 국정원은 계속 음지에서 체제와 국익보호에만 전념해야 한다. 물론 정권이 바뀌더라도 항상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이장훈 국제부 차장
truth2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