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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마침내 심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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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마침내 심판대

입력
2001.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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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악의 학살사건 중 하나인 '킬링필드'에 대한 역사적 심판의 길이 열렸다. 캄보디아 의회인 민족회의는 2일 1975년 4월부터 79년 1월까지 전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70여만 명을 학살한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에 대한 국제재판소 설치 법안을 승인했다.크메르 루주의 집권자였던 폴 포트의 추종자들이 자행한 각종 인권유린 행위를 심판하기 위한 이 법안은 지난해 4월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의 합의 아래 성안됐으나 이후 이해 당사자간 이견으로 8개월 동안 의회 심의 조차 하지 못했었다.

19조 48장으로 구성된 이 법안은 유엔과 베트남이 추천한 판사 각 1명과 캄보디아인 3명 등 5명으로 구성된 합의제 재판부에 의해 재판을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살자들에 대한 단죄는 법안의 통과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에 발목이 잡혀 있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규정이 많은데다 특히 훈 센의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 내에 폴 포트의 잔당들이 엄존, 재판정 설치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크메르 루주에 대한 재판을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으로 간주하고 있다.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이자 국회의장인 노로돔 라나리드도 3일 "이 법안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상원을 통과해야 하고 헌법재판소의 법적 검토에 이어 국왕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면서 "이후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의 서명으로 국제재판소가 설치돼 판결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1~2년이 더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재판소가 설치되더라도 최종 결정은 5명의 재판관 중 4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유죄 평결이 내려질 확률도 그리 높지 않을 전망이다. 더구나 누구를 어떻게 기소하느냐를 놓고 정쟁이 불가피한데다 핵심 인물 대부분이 도피 중이어서 '피고 없는 재판'이 될 가능성도 크다.

1998년 사망한 폴 포트의 잔당 가운데 현재 훈 센 정권이 억류 중인 인물은 군사령관을 역임한 타 목(74)과 경찰총수였던 캉 켁 예우(58) 등 몇 명에 불과하다. 훈 센이 반드시 처단하겠다고 다짐한 크메르 루주의 국가원수 키우 삼판(68)과 그의 동료 누온 체아(70대 초반)도 1998년 12월 투항 후 태국 국경에서 잠적, 검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크메르 루주 정권의 외무장관을 역임한 이엥 사리(72)는 1996년 병력 3,000명을 이끌고 훈 센 정권에 투항한 후 시아누크 국왕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현재 태국 국경지역의 파일린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여전히 대규모 무장병력을 보유중인 그는 자신이 기소될 경우 내전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재판의 또 다른 변수로는 당시 크메르 루주를 지원했던 중국과 1979년 크메르 루주를 무너뜨렸던 베트남의 힘 겨루기에서 누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캄보디아의 국익에 따라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유엔과의 공동 재판소 구성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킬링필드'에 대한 역사적 단죄는 이번 법안 통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으며 '인간을 박해한 자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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