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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제에 우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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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제에 우연은 없다

입력
2001.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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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면 누구나 새로운 결심을 한다. 주변여건이 달라진 것은 없어도 무엇인가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 방법으로는 알지 못할 힘에 의지해 요행을 바라거나 스스로 노력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집합적으로 보면 사회가 불안할수록 전자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사람들이 갑자기 비합리적으로 변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힘은 경제주체의 자발적인 선택이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정보의 접근이 용이하며, 노력의 정당한 대가를 받게 만드는 시장제도들이 정착돼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소비와 투자가 급속히 움츠러드는 것은 당장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는 이유가 더 크다.

가계와 기업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물가 금리 임금 주가 등을 보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들 변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미래에 관한 자신있는 판단을 하기 힘든 것이다.

요컨대 시장경제가 돌아가게 하려면 선택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여지를 줄여야 한다. 정부의 일차적 역할은 경제주체 들이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다.

이미 성숙한 시장경제의 틀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들의 거시정책은 예기치 못한 외부충격이나 내부수요의 변화를 완화해 가격변수를 안정시키는 것이 기본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시장에서 나오고 정부는 시장이 제 기능을 하게끔 보완하고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반면 과거 우리 경제를 보면 정부가 시장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부분이 많았다.

수요 공급에 따른 시장의 힘보다는 정부정책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경제주체들도 시장의 흐름보다는 정부의 의중을 읽는 데 비중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개방화가 지속되면서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이 갖는 한계가 드러났고, 경제주체의 왜곡된 의사결정이 초래하는 비효율이 쌓이며 시장원리가 작동할 여지는 좁아져 갔다.

급기야 경제위기라는 비등점을 통과하며 과거의 방식에 대한 반성이 본격화했고 IMF라는 외부의 힘까지 동원하여 시장자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진행중인 구조개혁은 시장경제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장기적인 제도정립의 문제와 단기적인 경기조정의 문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특히 올해는 구조조정의 고통과 경기침체의 여파가 겹쳐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자연 백가쟁명식의 처방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이런 혼란의 과정에서 잘못된 정책결정이 내려지기 쉽다. 무엇보다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을 무슨 양자택일인 것처럼 양립시키는 흑백논리가 걱정스럽다.

구조조정이 중요하다고 경기침체에 따른 정상적인 정부지출까지 부인하는 식의 처방은 곤란하다. 오히려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실업대책이나 사회간접자본(SOC)투자 등 보완적인 경기정책을 병행하는 것이 '윈_윈(win_win)'의 선택일 수 있다.

반면, 통화증발이나 예산의 조기집행과 같은 맹목적인 단기부양책은 정책의 착시효과를 가져와 정부와 경제주체의 구조조정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살아나려면 먼저 구조조정을 통해 자율적인 시장체제의 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정책목표를 모두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보완성을 생각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자는 것이다. 경제에 우연은 없는 것이다.

전주성ㆍ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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