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월3일 바티칸 교황청은 가톨릭 성직자들을 탄압했다는 이유로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파문(破門)했다. 파문이란 신자의 자격을 박탈해 종교 공동체에서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이로써 카스트로는 서임권(敍任權) 문제로 교황청과 대립하다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파문 당한 11세기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 그리고 중세 교회의 관습이었던 면죄부(免罪符) 판매를 비판하고 교황과 공의회의 무류성(無謬性)을 부정하다가 교황 레오 10세에게 파문 당한 16세기 종교개혁 지도자 마르틴 루터와 함께, 가톨릭 파문 리스트에 오른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파문 제도가 흔히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교회의 역사는 보여준다.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초까지 로마와 아비뇽 그리고 나중에는 피사로 분열된 교황청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다른 파의 신자들을 집단적으로 파문한 것이 대표적 예다.
초창기의 쿠바혁명이 토지 개혁이나 외국 자본의 접수 등 그 진보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혁명과 일정한 거리가 있었던 것은 혁명 이듬해인 1960년에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가 출간한 에세이 '들어라 양키들아'에 잘 묘사돼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지속적인 반혁명 공작은 카스트로로 하여금 혁명의 보위를 위해서 친소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하게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 때도 그랬듯, 쿠바 혁명의 가장 커다란 적도 외세나 기득권층과 결탁한 가톨릭 교회라는 것이 카스트로의 판단이었다.
그는 혁명 이후 교회의 여러 특권들을 폐지했고, 파문을 당한 뒤에도 크리스마스를 평일로 만드는 등 반교회 정책을 계속 펼쳤다. 쿠바에서 크리스마스가 다시 휴일이 된 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아바나를 방문한 지난 98년 이후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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