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21세기를 여는 첫 해를 맞아 해외 전문가들과의 연쇄대담을 마련했다.로버트 갈루치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장이 정치ㆍ외교 분야에서, 로버트 라이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부소장이 경제분야에서, 레스터 브라운 월드워치 연구소장이 시민사회 분야에서 앞으로 전개될 미래와 과제를 각각 전망했다. 대담은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이정훈 교수가 진행했다.
/편집자주
■대담 이정훈교수
1994년 미국과 북한과의 제네바 핵 협상을 주도, '핵대사'로 알려진 로버트 갈루치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장은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한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북한의 기본적 변화가 확인되기까지는 신중하게 대처해야만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0일 퇴임하고 조지 W 부시가 제 4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지난 8년간 클린턴의 외교정책을 평가해달라.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경우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는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소말리아를 비롯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고 이디오피아에서 보듯 아직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또한 서남아시아의 경우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개발경쟁을 막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도와준 점은 높이 살만하다. 미국의 이 같은 도움은 러시아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에도 이익이 됐다.
중동 문제에서는 중동평화협상의 지지부진함과 대이라크 관계에서 보듯 노력에 비해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北, 투자분위기 위해 南과 좋은 관계 노력 타국도 도와줄 필요"
중국과는 대체적으로 어려운 관계를 지속했다. 앞으로 대중 관계에 있어서 미국은 중국이 강력한 국가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새로 출범하는 조지 W 부시행정부가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정책을 살펴보자면 클린턴은 당선되자마자 북한을 가장 큰 현안으로 간주했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의 친선을 바탕으로 상호 긴밀한 협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북한 핵문제는 결과적으로 1994년의 제네바 핵 기본합의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미국의 역할 못지않게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한승주(韓昇洲)이 외무부 장관 이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남북한 관계와 북미관계가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의 자세변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데.
"미국이 최근 들어 대북 문제에 휩쓸려 든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주한미군이나 전투용 무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직 북한 핵문제 때문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핵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내 생각으로는 대북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남북한간의 어려운 관계를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했다고 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거의 없다.
북한은 아직도 김정일이라는 1인이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위협적인 나라다. 북한 외교의 제 1목표는 체제유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서방 각국과 대북관계개선을 도모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북 지원과 대북 투자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 정부 일각에서는 부시 당선자의 외교 참모진들이 보수강성이라며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는가.
"예상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굳이 전망하자면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대북 정책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지명자 등 부시의 외교 참모진을 자주 만나고 있는데, 그들은 선거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다소 강경한 공약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부시, 對北 골격유지 해외주둔군 조정해도 주한미군 감축없을것"
나는 과거에 북한측과 다양한 협상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런데 파월 지명자 등은 나를 포함해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북한측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지원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북한에 식량 등을 지원했는데도 불구, 너무 유약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북한은 여전히 대량살상무기(WMD)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미사일을 쏘아올렸다고 혹평한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당신들이 더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대꾸했는데 그들도 당시 상황에서는 포용정책이 최선이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부시 당선자측의 기본적인 생각은 클린턴 행정부가 해왔던 것처럼 남북한이 직접 대화하게 만들고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뒤에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지명자는 현재 미군이 해외에 너무 얇고 넓게 배치돼있다고 비난하며 해외주둔 미군의 재조정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주한 미군에도 병력감축 등 위상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전적으로 내 사견이지만 미국은 당분간 주한 미군의 감축을 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부시 당선자측은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와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에 대단히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은 한국을 TMD 체제에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해 분명히 반대의사를 밝혔었다. 앞으로 이 문제가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부시 행정부로서는 NMD 조기배치 문제가 취임 이후 대외문제 중 최대의 현안으로 등장할 것으로 본다.
러시아와 중국 등의 반발이 예상되며 의회에서도 논란이 일 것이다. TMD 문제에 관한 한미간의 이견은 별다른 이슈가 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섬으로써 한미간에는 서로 조율할 현안이 갑자기 많아졌다. 부시 대통령 당선자와 김 대통령이 이른 시일내 만나서 대북문제 등에 관해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미국 외교에서 한반도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두 정상이 빨리 만나서 대북 정책을 재조정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 핵 문제 등으로 북한측과 여러 차례 협상을 했는데 북한의 협상 태도를 평가하다면.
"최근 국제무대에서 왕성한 공개외교활동을 펴고있는 북한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북한의 외교협상자세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1994년 제네바 핵 협상 때도 과연 그들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낸 마당에는 협상파트너로 일단 인정해야만 한다는 견해가 우세해서 대화를 진행했다.
무려 16개월에 걸쳐 그들과 마주앉아 지루한 외교전을 폈는데 다행스럽게 핵 동결협정을 맺을 수 있었다.
이때 느낀 바로는 언제나 북한의 자세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그들의 목표와 전략을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북한은 외교협상에 관한한 대단히 수준높은 교섭력을 갖고 있다."
▲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일거수 일투족은 국제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 국방위원장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직까지 김정일을 만난 적이 없어 내 평가 역시 언론보도, 특히 TV에 비친 모습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김일성 사후에 자신이 완벽한 후계자로 자리잡았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 한 것 같다.
그는 이미 아버지 못지않은 절대 권력자에 군림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김정일이 서로 말이 통하는 협상파트너로서의 자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은연중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다만 그의 유연한 태도변화가 근본적인 변화를 뜻하느냐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회의적이다. 북한은 아직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전체주의 국가이자 종교적 광신도 국가임은 분명하다."
▲ 동북 아시아는 대단히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5년 후에 동북아 지역이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는가. 특히 남북한 관계는 어떻게 발전할 것으로 보는가.
"먼저 남북이 그때까지 통일되기는 힘들다고 본다.(웃음) 그러나 북한이 세계와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대남 군사위협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도 당분간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줄여나가는 등 남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때문에 외부 세계도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진행해나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정리=윤승용 워싱턴 특파원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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